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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어머니의 자서전 작업을 마무리하며

  서른여섯에 척추압박골절을 당했습니다. 삼 주 간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식사도 화장실도 누워서 해결해야 했지요.

  완치된 후 생업을 접고 소설 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가 두엇은 있을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없이 소설이나 쓰러 다니는 딸에게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집안에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오겠구나. 내 자서전도 좀 써다고.”

 
  그랬습니다. 엄마는 언제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저를 응원해 주셨습니다.


  자서전을 써 드린다는 약속을 십여 년이 지난 이제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사실 써 드린 것이 아니고 엄마가 볼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눌러 쓴 글을 맞춤법에 맞게 워드프로세서에 입력하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엄마의 글을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엄마의 삶이 저를 관통하여 자판으로 입력되면서 생동감과 진정성이 떨어졌습니다. ‘그 남편이 아주마 더러 얼마냐고 뭇는다. 아주마의 말 조금 있어요 한다. 나는 얼른 예상 장부를 내어 남편에게 보여주니….’ 이 문장이 더 생생하게 마음에 와닿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스물여덟 즈음의 엄마가 돌쟁이 아기를 업고 머리에 모기장 자투리 천을 이고 네 살, 여섯 살 아이들은 걸리고 집집이 행상 다니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천의 무게와 신산한 삶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져 제 목도 뻣뻣해졌습니다. 모래 지게를 지고 공사장 발판을 오르내리며 가끔 서서 단내 나는 숨을 몰아쉬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여지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새마을 사업 현장에서 어리바리한 청년을 도와주시던 때의 뭉클함, 벽돌공장에서 땀 닦을 틈도 없이 벽돌이 얹힌 널판을 나르는 고통을 감내한 이야기….

  그러고도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젊을 때 극한 노동, 지옥 훈련, 특수 훈련으로 단련돼서 건강하다고. 건강하게 길러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위험한 일을 해도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원고를 읽은 남편이 말했습니다. “어머님 정말 대단하시네. 훌륭하신 분이야.” 감동한 남편은 ‘내 마음속 눈물 별들이 되어’라는 멋진 제목과 헌시를 지어주었습니다.
  큰 노력 없이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게 저 혼자 잘나서인 줄 알았는데 학창 시절 1등을 놓친 적 없는 엄마가 물려 주신 공부 머리 덕분이었습니다. 초·중·고 12년간 개근이 제가 부지런해서인 줄 알았는데 일흔여덟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신 아버지의 성실함을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민경아. 네가 그 애와 헤어지고 나니까 이별 노래 가사가 모두 마음에 깊이 박히는구나.”
  “딸아. 생일 축하한다. 네가 내 딸이어서 행복하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며 축복받을 그릇이 되길 엄마가 매일 기도한단다.”
  스물넷의 엄마는 아기와 배고픈 삶을 살았는데, 스물넷의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라이드 강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되었습니다. 서른셋의 엄마는 서울 변두리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서른셋의 저는 테헤란로 벤처기업의 기획팀장이 되었습니다.

  열심이 없어서 못한 일들은 있었지만, 배운 게 없어서 해보지 못한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희생하며 길러 주신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동생의 학비를 대 준 언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갚을 길 없는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주셨던 부모님의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제가 부모님의 빛나는 훈장이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힘차고 알차게 살아내겠습니다. “아버지,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피우길 피우길’
  -  SG워너비 김진호 작사, 작곡, 노래, ‘가족사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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