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예배라는 형식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오래전 하나님 말씀이 꿀같이 달아서
예배시간이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배가 친구와의 만남이나 여행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요즘 햇빛을 못 봐서 그런가.
기분이 처지고 잠이 많이 오더니 예배 시간에 늦고 말았다.
늦는 것은 나랑 거리가 먼 일 이었다.
Better late than never 라지만
발걸음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주일 오전, 비오는 거리는 사람이 없어 적막했다.
무심한 시선을 사로잡은 건 정충각이었다.
생육신 중 한 분인 관란 원호 선생님을 기리는 곳이라 한다.
생육신이란
[생육신은 단종이 그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세조에게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신하들이다.
1456(세조 2)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은 사육신에 대칭하여 생육신이라 했다.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을 말한다.
이들은 세조 즉위 후 관직을 그만두거나
아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세조의 즉위를 부도덕한 찬탈행위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중종반정 후 사림파가 등장,
사육신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오게 되면서
이들의 절의 또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뒤 조정에서 시호를 내려주는 등 크게 추앙받았다.]
원호 선생님은 560여 년 전 인물이었다.
560여년 후에 한 처자가
당신을 기리는 정충각 주위를 서성일 줄은 알지 못하셨겠지.
다시 560년 후에도 정충각은 남아 있을까 생각하다가,
50년 후도 기약 못할 내가,
560년 후를 생각하는 것이 부질없어서,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머무르라고 타일렀다.
고인이 계신 곳은 ‘부도덕한 찬탈’ 없는 평화로운 곳이길.
정충각 뒤편으로
열매를 잔뜩 단 대추나무 가지가 길가로 휘어져 있었다.
이렇게 비가 계속 오는데
열매가 열고 크기를 키우고 있다는 게 기특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태풍도 천둥도 벼락도 니 안에 품고 붉게 익으렴.
무서리 내리는 밤과 땡볕 쬐는 낮도 견디며 둥글어지렴.
대추는 온갖 험한 거 다 견디라고 말해놓고
나는 원주 곰식당에서 흰 쌀밥에 뜨끈한 미역국을 먹었다.
꽁치 조림, 무생채 나물, 잔멸치볶음, 북어꽈리고추조림,
가지나물, 호박나물, 김치, 계란 후라이.
두어 술 뜨고 있는데
이모님이 노각무침이라며 반찬 하나를 더 내왔다.
아삭아삭 새콤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닌데
한 끼 밥으로 위로 받기도 한다.
든든한 밥심으로
태풍, 천둥, 벼락을 품어내고
무서리, 땡볕, 초승달의 외로움... 견뎌내야지.
대추 한 알
- 장 석 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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