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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남편의 전 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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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를 처음 들었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고서 남몰래 펼쳐보아요. (...)

언젠가 또 그날이 온대도 우리 서둘러 뒤돌지 말아요.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아요.’라는 가사를 듣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대사가 떠올랐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가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노래 가사와 영화 대사에 대해 언젠가는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 * *

지난 일요일(21),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나자 도반(남편)이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별 목적 없이 드라이브라니. 일 년에 두어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비가 내리는 도로를 달려 신림 구학산방에 도착했다. 조용한 산 속 집들을 구경했다.

다시 차를 달려 연애 시절 데이트 장소였던 제천 의림지로 향했다. 공원처럼 조성된 너른 장소를 보며 도반이 말했다.

도반 저기서 얼음 축제 했었지?

얼음 축제? 우리 3월에 왔었는데? 우하하하~ 그분하고 왔었구나요~~

도반 그랬나...

연못 둘레를 산책했다.

도반 저기 오리배도 있네. 우리도 탔었지?

우리가? 오리배를?? 우하하하~ 아놔~ 웃겨~ 아이고 배야. 왜 그분하고의 추억만 기억해~? 오리배 페달 밟기 힘든 거 알죠? 오늘 벌칙으로 오리배 타겠습니다~ 새 추억으로 옛 추억을 덮겠습니다~~

도반은 마지 못해 오리배 쪽으로 향했다.

아냐~ 농담이야~ 안 타도 돼요~

 

음식 잘하고 과묵하고 어린이집 운영하며 돈도 잘 번다는 그분. 지금 도반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전문직에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지만 그분을 만날 당시 반지하에서 궁핍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분에게 도반은, 도반에게 그분은 평생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었다.

 

지난 겨울, 이웃집 주차장 쪽으로 넘어간 우리 집 감나무 가지를 이웃이 꺾어서 우리집 쪽으로 던졌나 보았다. 도반은 허락도 없이 남의 집 나뭇가지를 꺾은 것에 분개했는데, 나는 쯧쯧쯧. 나무 주인한테 말하고 꺾을 것이지.’ 생각하고 말 정도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가을에 홍시가 떨어져 이웃 차를 더럽힐까 봐 담장 넘어간 가지들을 정리하고 싶던 참이었다. 도반에게 이런 나는 답답한 바보라 우르르 쾅쾅쾅 천둥같이 화를 냈다.

나는 손해보는 쪽을 택.하.며. 사는 바보스런 나를 사랑한다.

바보스럽게 사는 쪽을 택.하.면. 화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정신 건강에 참 좋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보스러운게 아니라 바보스러움을 택하는 것이다.

내가 바보스러움을 택하지 않은 에피소드들.

 2019/07/07 - [생각 삶 사랑...] - 자네가 살던 마을은 어땠나?

2019/05/30 - [생각 삶 사랑...] - 사랑에 답함 

 

하여, 나는 내 모습 그대로를 지키려 애쓰며 살 것이고 도반은 답답해서 계속 화가 날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달라서, 달라도 너어무 달라서 같이 살 수 없어요.

다름이 표출될 때마다 당신은 혈압이 올라서 제 명에 못살 거고

나는 극심한 모멸감으로 정신이 피폐해질 테니까요.

당신한테 받은 것이 참 많은데 미안해요...

 

잠이 오지 않던 그 밤, 혼자 남게 될 도반이 안쓰러웠다. 비록 서로 너무 안 맞아서 헤어져도 도반의 남은 생이 행복했으면 싶었다. 도반의 그분을 떠올렸다. 그분은 지금 혼자일까. 진심으로 그분께 도반을 부탁하고 싶었다. 안다, 나도. 내가 오지랖인 걸. 이틀 후 도반은 나를 꼬옥 안아주며 나 없이는 안 된다고, 내가 곁에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해 주었다.

 

도반이 나랑 달라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도반도 자신이 평범하지 않은 면이 있다는 걸 안다. 바꿀 마음이 없다고도 했다. 그와 같이 살려면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바뀌지 않겠구나.' 

나 역시 평범하지 않은 면이 꽤나 있다. 남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바꾸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다름으로 인해 도반의 천둥번개가 치고 나면 이렇게 사과한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해서 사과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당신 화를 돋구게 돼서 사과하는 거예요." 

 

그분께 혼자 남게 될 도반을 부탁하고 싶었던, 그 밤 이후였다.

내게 질투의 감정이 없어진 게.

그랬기에 제천 의림지에서 도반이 그분과의 추억을 말해도 재밌게 웃을 수 있었다.

 

누군가 질투란 사랑받는 자로서 자신 없음이라고 하더라.

 

금요일(26)에 도반과 삼계탕을 먹으러 갔었다. 도반은 내가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내가 거미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가늘고 예민한 신경줄이 사람들의 세세한 감정을 감지한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에 거슬리지 않게 말할 줄 안다. 일부러 거슬리고 싶을 땐 독사같은 말을 심장 깊숙히 박을 줄도 안다. 그리곤 후회한다...

 

'도 '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이치'다.

내가 실천하고 싶은 '도'는

아무리 어리고 아랫사람이라도 사소한 불쾌감도 주지 않으며

더 나아가 온정을 베푸는 것이다.

노소와 남녀, 종교와 인종을 넘어 우리는 모두 존중받고 싶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도반이 사람들의 감정을 잘 모르는 거 같다고 말해 주었다. 아마 옛날의 그분도 도반을 넓은 맘으로 품어 주었을 거라고. 그러자 도반이 이건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라며 스맛폰을 꺼내 카톡 화면을 보여주었다. [717일 오후 11:27 잘 계시죠?] 그분이었다. 도반은 자신이 아직도 생생한 그리움의 대상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일절 답신을 하지 않는 자신의 절개^^를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얼마나 그립고 외로우면 수 년이 지난 후 옛사랑에게 저런 톡을 보냈을까.

나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죽을 거 같아도 톡을 보내느니 심장이 상하도록 참고 참는다.

실연 후 슬픔이 극에 달해 밥을 못 먹은 적이 있다.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보약을 지으러 한의원에 찾아갔다.

맥을 짚은 한의사가 심장이 많이 상했다며 심장을 보하는 한약을 지어 주었다...

 

그분과 친구처럼 지내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진심이었다. 

도반은 그럴 마음이 없다고 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남자 주인공 츠네오는 진정한 사랑이 끝난 후 오열하며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라고 독백한다.

 

나 역시 친구로 만날 수 없는 옛사랑이 있다.

지독히 사랑했던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아픔이 있다.

숨쉬기 조차 힘든 아픔을 품고서,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차마 볼 수는 없는 것이다.

 

* * *

조제 -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츠네오 - "그냥 깜깜하기만 해."

"거기가 예전에 내가 살던 곳이야."

"어딘데?"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왔어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랬구나... 조제는 해저에 살았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와. 정적만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서른 중반에 영화관에서 혼자 본 영화, 조제의 점잖음과 의연함에 반해 버렸다.

조제가 조개껍질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살다가

누군가를 다시 만나

물고기처럼 헤엄쳐 나왔으면 싶었다.

 

영화 감상문을 조제에게 보낸는 편지형식으로 썼었다.

나는 지금 숨쉬기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너처럼 조개껍질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의연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겠다고...

 

전남편 브루스 윌리스와 (지금은 전 남편이 되었지만 사진 속 당시)남편 애쉬튼 커쳐와 함께한 데미 무어

(아래 공감 누르기는 제게 더 잘 쓰라는 격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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