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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악동뮤지션 오랜 날 오랜 밤 - 파헬벨의 캐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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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에게 자신을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하는 두 가지 방법.

하나는 변태를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을 선물하는 것이다. (...)

그런데 세월이 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사람이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CD를 버려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음악을 틀고 있으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무방비 상태로 함께 듣던 음악의 습격을 받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제 퇴직한 우편 배달부처럼 우울해진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음악에 휘둘리게 된다.

그럴 때 음악은 변태의 추억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집요하다.’

- 김영하 에세이, [포스트 잇]중에서

 

고백하자면, 작가 김영하의 [포스트 잇]을 읽어보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보게 된 위의 문장에, ! 하고 꽂힌 것이다.

내게 옛사랑에 얽힌 음악은,

집요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습격당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죽은 세포인 머리카락 끝에서 발톱 끝까지도.

 

이상은 - 언젠가는

쿨리오 - C U when U get there

마이클 런즈 투 락 paint my love

윤도현 사랑 two

이문세 옛사랑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크라잉 넛 말 달리자

파헬벨 캐논

......

 

내가 일하는 가게에는 하루종일 라디오를 작게 틀어놓는다.

귀 기울여 듣지 않기에 노래들이 간헐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얼마 전부터 악동뮤지션 이수현의 맑은 음색이 인지되었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오랜 날, 오랜 밤]이었다.

제대로 들어보려고 유튜브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른 순간,

피아노 전주로 파헬벨의 캐논이 흘러나왔다.

 

* * *

그는, 서른한 살의 내게 파헬벨의 캐논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캐논은,

수줍음이 많았던 사춘기 조카 H가 피아노로 연주했던 곡이었다.

조카는 남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쑥스러웠나보다.

피아노가 있는 방문을 닫고 혼자 연주했고

나를 포함한 친척들은 거실에 앉아 방문 저편의 캐논을 들어야 했다.

......

 

캐논을 좋아하는 그는,

나의 부름에 제때 응답하지 않았다.

그를 통해 희망고문이 얼마나 형편없는 짓인지 알게 되었다.

그가 찾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기에 그랬으리라.

 

먼저 이별을 고할 용기도 없는 그에게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세상에 나보다 좋은 여자는 아주 많겠지만

나보다 진실된 여자는 흔치 않을 걸요? ^^ 

좋은 분 만나시길 바라요~"

 

* * *

별 하나 있고, 너 하나 있는

그곳이 내 오랜 밤//이었어.    (...)

그대 곁이면 그저 곁에서//만 있어도 행복했단 걸

그 사실까지 나쁘게 추억 말아요.    (...)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   (...)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줄래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소중해   (...)’

 

남편의 제안으로

남편의 친구 A와 나의 친구 O를 소개해 주었다.

2년 간 꽁냥꽁냥 사귀던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남편 - OA에게 소개시켜 준 친구를 봐서 예의상 만났다고 했다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쁜 년!! 내가 다 부끄럽고 미안하네...

A에게 꼭 전해 주세요. O의 진심이 아니라고.

 

아직 뽀송하게 어린 악동뮤지션도

성숙한 이별을 노래하는데... 하물며...

 

이별이 아름다워야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도 편을 들어줘야 진정한 친구라면

나는 O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그럼에도,

O가 많이 아프지는 않기를.

 

 

(아래 공감 누르기는 제게 더 잘 쓰라는 격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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