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신림 카페 추천 들꽃이야기 야생화 천국 또 가고 싶은 곳
원주에서 평창 전원주택에 가려면 신림을 지나야한다. 치악산 명성교회 수양관도 있고 용소막 성당도 있고 신림 성황림 마을도 있으니 ‘신이 임하는 곳’, 신림이라 할 만하다. 카페 들꽃 이야기는 원주시 신림면에 있다. 공간이 주는 위로를 느껴보고 싶다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언제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로 323-12
전화 : 033-762-2823
영업시간 : 11:00~18:00
휴무 : 화요일
주차 가능, 예약 가능
들꽃 이야기에는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들, 주인장의 세심한 보살핌이 느껴지는 다양한 야생화와 다육이가 있다. 600여 종의 야생화가 있다고 한다. 카페를 둘러 싼 나지막한 산세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상 좋은 사장님이 호수로 식물들에게 물을 주시며 마당을 식히고 계셨다.
나 : 사장님, 여기 앉아 있으니 마음이 푸근해져요. 터가 좋은 거 같아요.
사장님 : 풍수지리를 좀 아시나 봐요. 풍수지리 상 좋다는 조건에 다 맞는 곳입니다.
테이블 마다 야생화가 소박하게 장식 되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함박꽃.
사장님 : 우리나라 토종 목련꽃이에요. 많이 시들었네.
27년 전 작은 묘목으로 심었다는 나무는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둥치를 키우며 힘차게 가지를 뻗었다. 카페를 둘러 싼 돌담도 사장님이 하나하나 돌을 쌓아 만드셨다고 한다. 식물을 좋아한다면 ‘천리포수목원’에 가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천리포수목원, 마음 속에 저장.
마음이 몰랑해져서 마주 앉은 지인에게 가슴 속에 품고 살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위로 세 언니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는 넷째 딸로 태어났어. 바로 위에 언니는 병약했고 동생은 그토록 원하던 아들이어서 나는 관심 받지 못했지. 누더기 이불에 싸여있던 갓난쟁이 나를 보고 이모가 예쁜 이불을 사다주셨다고 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어서 ‘덤’이라는 별명도 있었어. 아장아장 걸어가서 마당의 개밥을 퍼 먹었다거나 지가 싼 배설물을 주물렀다는 걸 보면 종종 악의 없이 방치되었었나봐.
관심 받지 못한 아기가 거울을 보며 혼자 춤을 추고 놀았다는 얘기가 있어. 거울 속의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거지. 게다가 나는 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선생님들의 칭찬 세례를 받았거든. 집에서는 미련 곰탱이 ‘덤’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재치 만점의 우등생이었던 거야. 자기애가 더욱 강하게 형성되면서 건강한 자기애와 병적인 자기애가 생긴 거 같아.
어릴 땐, 눈치가 빤해서 애늙이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 지친 표정의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못했어. 학용품이나 재료비가 필요해도 말하기를 최후까지 미루다가 당일 아침에 말하곤 할 정도로.
엄마는 그 어려운 살림에도 하나뿐인 아들에게 자전거, 침대, 책상, 텔레비전을 사 주셨어. 나? 중학생 때 손목시계 받고 많이 기뻐했었지. 동생이 결혼 할 때는 차도 사 주고 비용도 수천 만 원 대주셨어. 내가 결혼할 때는 달랑 냉장고 하나 사 주시더라.
엄마는 종종 내게 말했어. “넌 뭐든지 혼자서 잘 하잖니.”
엄마 입장에서는 부족한 자원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는 걸 잘 알아. 너에게 가끔 말했듯 엄마를 진심으로 존경하지. 그런데 내 무의식에는 차별받고 자랐다는 억울함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 있나봐. 내면의 상처 받은 어린아이를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데 무의식은 참 집요한 구석이 있더라.
지난 4월.
엄마는 평생을 차별인 줄 모르고 나를 차별했듯 명백히 실수한 아들을 감싸기에 바쁘셨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사소한 일이었는데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지.
엄마 앞에서 짐승처럼 울부짖는데 실시간으로 자기혐오와 자괴감이 느껴지더구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평생을, 어떻게!! 주양육자인 엄마랑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나는 지금도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게 불편하고 어색해! 너는 뭐든지 혼자서 잘 한다는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죽을 만큼 힘들어도 도움을 청할 줄 몰라!!”
............
내가 엄마 앞에서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몰라서 그렇게 처참히 무너져 내렸겠니. 어린시절의 아픔과 슬픔을 한참 전에 극복했어야 한다는 걸 몰라서 그랬겠니. 무의식에 깊게 뿌리박힌 부정적 감정들이 폭발한 거지. 무의식이 왜 무의식이겠어. 의식으로 콘트롤 할 수 없으니까 무의식이지. 물론 무의식에 긍정과 사랑 에너지를 심는 명상과 기도 등 노력을 하고는 있어.
이틀 밤을 불타오르는 분노와 억울함, ‘좋은 글을 아무리 많이 읽고 좋은 글을 쓰면 뭐하나, 사는 게 이 모양 이 꼴인데...’와 같은 자괴감과 자기혐오로 괴로워하며 뜬 눈으로 지새웠어. 사흘 째 되는 날은 내리 잠만 잤고. 그렇게 삼일 동안 우울의 밑바닥을 찍고 나니까 갑자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찮게 느껴지더라.
툴툴 털고 일어나서 밥을 챙겨 먹고 햇빛을 쬐며 산책했지. 다시 잘 살아 보고 싶은 의욕이 퐁퐁 솟았어. 이제 무슨 험한 말을 들어도 심상히 넘길 수 있을 거 같다는 심정이 되었는데, 바로 이 시기에 이런 글을 읽게 되었지.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만나는 사람마다 그게 누구든 친절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 무의식에 살고 있는 상처받는 어린 아이가 너그러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돌봐야겠지.]
블로그의 다른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