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습작 뜻
영화 ‘건축학 개론’의 감성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 노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기억의 습작이라......
기억의 습작 뜻은
기억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썼다......라는 뜻인 거 같다.
한마디로 ‘곱씹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기억은 아주 조금씩 왜곡된다.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를 타고났기에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된 기억을 고이 저장하게 된다.
영화 ‘오! 수정’을 통해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각자의 기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곱씹으며 습작하는 기억은,
아주 찬란했거나... 아주 참담했거나...
휘황찬란한 기억을 주었던 사람만이,
폐부 깊숙하게 참담한 기억을 줄 수 있다는 걸,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알지 못했지...
기억의 습작 듣기, 가사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 봐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너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전람회 기억의 습작이 불러 온 단상들
엄마는 과일을 좋아하셨다.
지난하게 가난했던 시절,
엄마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행상을 다니셨다.
광주리에는 떡과 과일, 삶은 메추리알... 등이 있었다.
팔다 남은 떡, 과일, 메추리알은 오남매의 간식이 되었다.
내 나이 대여섯 살 무렵의 여름.
밭에서 직접 받아 온 복숭아를 다 팔지 못해 많이 남았다.
씩씩한 나의 엄마는,
지금 생각해보니,
겨우 서른대여섯 살의 젊은 엄마는, 말씀하셨다.
“얘들아~ 우리 복숭아 실컷 먹어보자꾸나~!”
복숭아를 팔아야 쌀을 살 수 있을 텐데...라며 실망하지 않고
복숭아를 실컷 먹을 수 있다고, 사건을 해석한 엄마.
형편이 좀 펴지자 엄마는 늘 후식으로 과일을 내 놓으셨다.
우리 집에서는 식사 후에 과일 먹는 게 당연했다.
결혼 전, 남편은 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 연인, 부부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한다.
발전하든 퇴보하든... 우리는 관계를 통해 변한다.
그래서 김광석은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가네...’라고 노래했다.
내가 남편에게 준 변화는...
웃프게도,
어쩌면 유일한 변화는, 과일 먹는 습관인 거 같다.
토마토, 사과, 바나나, 아보카도, 자몽, 오렌지는 떨어지지 않게 준비해 둔다.
블루베리, 체리, 복숭아, 참외는 종종 준비한다.
마트에는 오후에 가는 편인데
바나나가 떨어져서 오전에 마트에 갔다.
쇼핑 카트에 바나나 한 송이를 넣고
감자를 담아 무게를 달아 가격표를 붙이고
싱싱한 파프리카를 고르고 있을 때,
마트 안에 전람회 기억의 습작이 울려 퍼졌다.
‘이젠 버틸 순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일/순/정/지/.
김동률의 음색은 날렵한 테러리스트가 되어
순식간에 뇌의 해마에 침투해
기억 저장 시냅스를 마구 헤집어 활성화 시켜버렸다.
작가 김영하의 표현에 의하면,
마트에서 붉은 파프리카를 손에 든 채,
'무방비 상태'에서 ‘음악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사람이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CD를 버려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음악을 틀고 있으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카페에서, 술집에서
무방비 상태로 함께 듣던 음악의 습격을 받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제 퇴직한 우편배달부처럼 우울해진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음악에 휘둘리게 된다.
그럴 때 음악은 변태의 추억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집요하다.’
- 김영하, ‘포스트 잇’ 중에서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만을 일깨워주듯
오롯한 그리움이 조용히 스며나왔다.
음악이, 그림이, 꽃이, 풍경이...
말보다 더 깊은 말을 하는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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