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반일만 근무한다.
오전에 부슬거리던 비가 멎고 낮에는 쨍쨍 해가 났다.
봄인가 하면 여름인, 계절 변화에 익숙하다.
봄옷을 다 입어 보지 못하고 여름옷을 입게 되곤 한다.
카페 Huh에서 커피를 마시며 두세 시간 책을 읽을 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인디밴드 잔나비의 노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흘러나왔다.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잔나비는 이제 더는 언더그라운드가 아닌 듯하다.
카페에 앉은 지 한 시간 만에 나와서
프리지어 한 단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글을 쓰기 위해.
느낌이 충만할 때 스마트폰으로 글쓰기는, 내 생각을 따라잡지 못한다.
손가락이 노트북 자판 위를 토톡톡톡 날아다녀야 한다.
친구의 플레이 리스트에 잔나비가 있었다.
친구와 함께 들었던 곡은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이다.
김춘수의 ‘꽃’에 나오는 싯귀의 순간을 살 때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친구를 통해 잔나비를 인지하자
잔나비는 매혹적인 음색과 시같은 가사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 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 걸 갖고도 돌아서 버렸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모든 걸 주고도 웃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것을. (한용운 작, ‘알 수 없어요’에서)
타고 남은 재는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온 누군가’로 인해 ‘다시 기름’이 되어
예쁘고 사랑스럽게 타오른다는 것을.
또다시 찾아온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 표현 방법이다.
어린 딸에게 어울릴 법한 귀여운 소품들을 사다 주는 것.
(오늘 사다 준 핑크핑크한 스노볼에는 Cherish every moment.라고 적혀있다.)
또다시 찾아온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 표현 방법은,
어린 딸이 할 법한 기쁜 리액션으로 남편의 따뜻한 마음을 헤아리는 것.
(워워~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 라고 생각하지 않기^^)
그리고
대여섯 가지 통곡물 잡곡밥과 생선구이, 나물, 샐러드로 저녁 밥상을 차리는 일.
친구에게 친구의 연인이 말했다.
“말했잖아. 자기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고.”
내가 나직이 빌리 조엘의 노래를 불렀다.
“I love you just the way you are~”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지금,
사랑하고 있는,
모든 이들과 듣고 싶은 노래.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
사족)
남편) 왠 꽃이야?
나) 오빠 주려고 프리지어 한 단 샀어요.
오빠는 예쁜 거 자주 사 주는 데 나도 보답해야지~
남편) 오빠는 저런 거 필요없다~
꽃보다 예쁜 너가 있잖냐~
나) 아윽~~ 오글오글~ 그거 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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