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개봉한 영화, ‘안녕, 헤이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만큼 인상적인 영화였다.
헤이즐 그레이스, 어거스터스 워터스.
열 일곱, 열 여덟 아이들의 대화와 사랑이 그다지도 깊이 있고 우아할 수 있다는 게 기특했다.
나는 고상이나 우아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로서 만족할 뿐이다.
고통과 죽음과 망각과 영원과 사랑...
철학적인 주제들을 맑은 감성으로 풀어낸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돋보였다.
1. 고통에 대해.
헤이즐이 좋아하는 책의 구절.
“The pain demands to be felt : 고통은 느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헤이즐이 네델란드의 안네의 집에 방문했을 때, 안네의 일기 나레이션이 흐른다.
“고통을 보는 대신 현재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려고 해요.”
오랜 병, 오랜 전쟁 등 고통이 생활의 일부로 만성화된다면 안네의 말처럼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런 고통의 순간에는 고통을 안 보고 피할 방법이 없다.
서른 여섯. 척추압박골절 사고를 당한 날.
뼈가 부러진 육체의 고통과 그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을 견뎌야했다.
견딘다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
견딘다는 것은 방어 의지가 들어간 표현이다.
극도의 고통 앞에서는 의지를 발휘할 바늘 끝만큼의 여력도 없다.
고통이 엄습하는 대로 고통에 유린당하고, 푹푹 절여지고, 치글치글 튀겨지고...
그걸 겪은 이후의 모든 고통은 그날의 고통에 비해 견딜만한 것들이었다.
울트라 캡 스트롱 고통을 통과하며 인성이 일그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만한 사건들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강인해지는 사람이 있다.
2. 망각에 대해.
어거스터스는 잊혀짐을 두려워한다.
헤이즐은 영원히 어거스터스를 기억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좋은 기억력과 반추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반추는 기억을 보강시킨다.
외국의 한 시인은 잊혀진 여인이 가장 가엾다고 읊었다.
왜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것은 이미 현재의 나와 남남이라는 거다.
남남인 사람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그리움이나 망각이 나랑 무슨 상관이람...
척추압박골절보다 더한 마음의 고통을 겪게 한 그.
연락하지 말라는 나의 온갖 포악을 다 겪은 후 그가 한 말.
“이.제.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제.야.가 좀 빨랐다면 좋았을 텐데.
그가 말한 이.제.야.는 헤어진 지 삼 년 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내가 망각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안다.
치매가 아닌 이상 그는 나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나 역시도.
3. 사랑과 영원에 대해.
헤이즐 : 나는 수류탄이야. 언제 터질지 모르고 터지면 주위의 모든 걸 망쳐.
어거스터스 : 너를 사랑해서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해도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어거스터스는 수류탄이 터지는 걸 경험하지 않았다.
열 여덟 전 생애를 통해 초강력 수류탄 폭발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 같다.
만약 내가 척추사고를 당한 날의 고통과 이후로도 오랜 세월 구멍 뚫린 가슴으로 삶을 견뎌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단언컨대 그와의 사랑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미 나는 모든 걸 겪었고 견뎠으며 이렇게 살아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이 있었음이 참 감사하구나...(그래도 그 모든 걸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최고의 열락을 주었던 사람만이 죽음보다 더한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이 하찮을 때가 있었다.
영원? 웃기고 있네.
그 영원은 유통기한 18개월짜리 호르몬이 일으킨 착각일 뿐이라구.
그런데...
그 착각의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영원을 느끼겠더라.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영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를 우주로 연결시켜 준다.
헤이즐의 방 천장에 야광 별들이 붙어 있다.
영화의 원제 The fault is in our stars.
잘못은 아픈 그들에게 있지 않고 우리 별에 있다는 거. 묘한 위로를 준다.
그러나 나는 안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고통도, 그들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나의 고통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분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그분의 선하심을 믿는 것,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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