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본문 발췌. 하이픈(-) 이후 내 생각.
소제목 2.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모든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맛보지 않으면 안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반복적인 경험’이 소확행이나 제3의 장소일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크게 공감한다. 나 역시 그 다름과 이상함을 자주, 골똘히 생각한다.
‘노아 루크먼은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으로 [프로그램]을 설명한다.’- 소제목 첫 문장은 ‘나는 호텔이 좋다’이다. 작가에게 호텔은 새로운 환경, 낯선 이들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경험이란다. 이는 작가가 어린 시절 자주 이사하면서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안도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프로그램된 특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쓰기는 나에게 여행이고, (비록 내가 창조했지만) 낯선 세계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입력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라는 것이 때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그게 뭔지도 모르는 채로.’- 소설가 김형경의 수필집 [사람풍경]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정신분석을 받아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그럴 수는 없으니 많은 책을 읽고 만남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내면의 허깨비’와 싸우는 에너지를 창조 에너지로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소제목 3. 오직 현재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리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기도 했었다. ^^
‘작가의 뇌는 들고 다니기 어렵지 않지만, 그 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모국어로 짜여 있다.’- 이런 표현에서 웃음과 찬사를 보내게 된다.
‘언어가 창작의 연료라면, 그 연료에는 등급이 있다. 나의 동료 작가들을 만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것은 그들이 동시대 최고 수준의 언어로 독특한 화제들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말과 태도에도 민감하다. 때문에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대화에 능숙한데 반대로 일부러 기분 나쁘게 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이것에 대해서도 써봐야겠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게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작가의 단편, [당신의 나무]의 소재가 되었던 앙코르와트 판야나무의 위용을 보며 쓴 글이다. 나도 앙코르와트에서 그 나무를 보았지만‘초월의 경험’은 하지 못했다. 후에 [당신의 나무]를 읽었다. 나무뿌리가 사원을 부수어버리는 것 같지만 나무뿌리가 잡아 줌으로써 사원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었다는,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한 소설이었다.
소제목 4. -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가서 거기 있고 싶어하고 직접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한다.’- ‘거기’는 서체를 달리해서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을 나타낸다. 나도 ‘거기’ 있고 싶다.
BBC 다큐멘터리 [인간 포유류, 인간 사냥꾼] 속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 칼라하리사막의 한 부족이 쿠두 영양을 사냥하는 이야기다. 활을 쏘는 것이 아니라 영양을 계속 추적하다 영양이 탈진해서 주저앉는단다. 인간의 ‘무시무시한 이동력과 지구력’을 보여준다.
작가가 아이오와시티에서 지내던 시절,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적지를 보러 간적이 있단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지형에 살던 원주민들은 강 옆에 인공 언덕을 쌓고 죽은 자를 묻었다. 작가는 바로 ‘배산임수’를 생각한다.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있는 종족’의 장례풍습이었다.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소제목 5. -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일본의 코미디언이 포르쉐를 사서 친구가 운전하게 하고 자신은 택시를 타고 따라 갔다는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왜 그랬는지는 책에서 확인해 보시길. 너무 본문 발췌를 하다보니 작가에게 죄송하다.^^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경험이 카프카의 소설 [성]을 연상하게 했단다.
전반부에는 질문을 던진다. 일쓸신잡을 보며 출연자들의 여행을 지켜보는 우리는 남을 시켜 좋은 구경을 시키고 이야기만 전해 들었던 유럽의 귀족이나 조선의 양반과 얼마나 다른가? 후반부에는 대답을 준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소제목 6. -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통해 그림자가 인간이 한 집단에 소속되는 자격인 [성원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 슐레밀은 여차저차 그림자가 없어서 부자임에도 결혼도 하지 못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포기하고 세계를 떠돌며 사는 걸로 끝난단다.
‘그는 그림자에 연연하지 않고 여행자/탐험가/발랑자로 살아가면서 만족하고 있다.’
억만장자 니콜라 베르그뤼앙(르몽드, 버거킹...의 주주)의 소유는 아이폰, 정장 세 벌, 전용기, 종이백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소지품이 전부란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갖가지 모험과 위험을 겪은 후에,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곳으로 돌아갔다.’
작가는 세계를 떠도는 것이 자신의 운명일지, 그런 삶이 온당한지 질문하고 있다.
소제목 7. -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여행의 개념이 좀 더 확대된다. 우리 모두는 지구별 여행자라고. 1968년 12월 아폴로 8호가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본 지구의 사진을 보냈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그 사진을 보고 ‘저 끝 없는 고요 속에 떠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이고 썼단다.
새로운 생명이 지구에 도착하면 스스로는 생존할 수 없다. 먼저 도착한 지구인들의 환대와 보살핌 속에 생존하고 성장한다.
작가는 낯선 곳을 여행하며 받은 환대에 대해, ‘나의 신뢰는 그의 환대로 돌아왔다.’라고 적고 있다. 작가의 여행 경험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소돔의 멸망 이야기를 여행자에 대한 환대의 이야기로 읽은 부분도 신선한다. 기독교도인 내 관점에서는 그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 이야기였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소제목 8. - 노바디의 여행
여행은 노바디가 되는 일이란다. 저자가 스물다섯에 파리 북역에서, 두 명의 젊은 백인 여성 백팩커를 만난 일화를 통해 한국인인 자신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알게 되었단다.
‘(...)공부만 죽어라 하고 운동 같은 것은 젬병인(...) 백인 여성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자는 여행지에 따라 자신이 정주민으로 보이길 원하는지 여행자로 보이길 원하는지 페르소나를 쓴다고 갈파한다.
오디세우스와 키클롭스의 이야기를 통해 노바디의 겸손을 잃고 섬바디가 되고자 하는 자가 초래한 어려움에 대해 썼다. 섬바디가 되고 싶었던 젊은 시절 작가는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에게 자신이 작가라고 밝히기도 했단다.
‘작가는 (주로 어떤 글을 쓰)는지를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는 이들, 즉 그 글을 읽은, 다시 말해 독자에게만 작가라는 것을.’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소제목 9. - 여행으로 돌아가다
케냐의 영국 총독이 마사이족 족장 아들을 케임브리지대학에 유학 보내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수년 후 아프리카로 돌아온 족장 아들은 유목민인 자기 부족을 찾을 수 없었다. 수개월이 걸리는 추적 끝에 만난 아버지가 말한다. ‘자기 부족도 못 찾아오는 천치를 어디다 쓴단 말인가?’
저자는‘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삶인 이들에게 여행이란 과연 무엇일까?’라고 질문한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현실에서 무질서하게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운다.’
‘나는 누군가와 오래 알고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친구들의 부족함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법, 내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법,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몰랐다. 알 필요가 없었다. 어치피 헤어질 테니까.’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저자는 마사이 족장 아들이 다시 떠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낄 것이라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작가의 말.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그래도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 바로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이다.’
4월에 읽고 이제야 독후감을 올린다.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미뤄뒀지만, 본문 발췌 수준인 것은,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거리는 독후감이 아닌 내 글로 풀어내고 싶다. 여행을 좋아하든 않든, 꼭 읽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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