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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당신의 컨텐츠/도서리뷰

바깥은 여름 1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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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바깥은 여름

지은이 : 김애란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1: 2017. 628

읽은 시기 : 2020. 1. 중순

 

한 줄 요약 : 작가 김애란의 단편 7.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아주 오래 전,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끝난 후 척추뼈 압박 골절이라는 사고가 났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소설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 후 수강생들과 맥주 한 잔씩 하며 소설 리뷰를 하곤 했다. 2005,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는 정말 신선했다.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 아니라 소설을 접고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휘리릭 십수 년이 지났다. 2020, 김 작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어보니 그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도 작가도 변했으니.

 

작가 하완은 더 많은 이야기를 안다는 건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잘 모르겠으나 화자의 느낌은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 여기까지 쓰고나서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읽어보았다. 내가 화자와 공감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오십이 개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인 <입동>을 읽으며 먼 신화를 읽을 때보다 더 메마른 관찰자였더라. 다른 이들이 발췌한 문장과 내 문장을 비교하니 더 명징했다.

 

<< 이하 입동 발췌, 창작과 비평, 2014>>

- 아내는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삶에서 생활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했다.

-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었다.

-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발췌 문장 어디에도 아이를 잃은 슬픔이 배어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작가의 의도(주제)를 잘 파악할 정도의 문학적 이해력과 공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니었다. 그간 소설과 너무 소원했나. 내 인지력이 떨어졌나. 지금, 소설을 느낄 여유가 없는 건가. 소설 속 화자들이나 나나 [바깥은 여름]인데 <입동>을 거쳐 겨울을 사는 건가.

 

<< 이하 노찬성과 에반 발췌, 릿터, 2016>>

-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엇인가를 꼭 보상해주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 담배 연기가 질 나쁜 소문처럼 순식간에 폐 속을 장악해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 찬성 또한 훌쩍 자라 아무데서나 울지 않는 소년이 됐다. 그렇지만, 그렇다 한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울지 않을 도리가 없는 열 살이 됐다.

-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 알고 있니?’

- 찬성은 본능적으로 이런 때 작은 금욕과 희생을 감내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리란 걸 알았다.

 

작가가 1년 여에 걸쳐 쓴 단편이라고 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에는 메말랐던 내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강아지를 돌보는 아이의 이야기에는 눈물을 펑 쏟고 말았다.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이야기에 녹아있는 관계와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있다는 어린 왕자의 문장도 생각났다. 정말 존재하는 인물들 같은,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 같은...... 찬성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 이하 건너편 발췌, 문학과 사회, 2016 >>

- 이날 두 사람은 평소보다 달게 잤는데, 저녁상에 오른 나물 덕이었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숲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 자신이 사마귀나 잠자리 눈 안쪽에 들어선, 아니 그보다 행정이라는 고등 생물 뇌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장을 신뢰했다.

-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 이수가 온몸에 전깃줄을 친친 감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환하게 웃었다.

-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헤어지는 연인의 이야기다. 한때 존재만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던 사람이, 마음을 짓누르는 사람으로 느껴지며, 그렇게 사랑이 변했다. 여자가 이별의 타이밍을 엿보는 순간부터 이미 둘은 <건너편>에 있는 것이다. 남자(이수)가 자신 몰래 전세금을 빼 고시 공부 비용으로 쓴 걸 안 여자(도화)가 배신감보다는 안도감을 느꼈다는 대목이 목에 걸렸다.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전남편에게 살의에 가까운 배신감을 느꼈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해졌던 경험이 있다. 용서를 빌며 매달려도 단칼에 이혼할 수 있었기에. 친정엄마가 말씀하셨다.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니가 이혼해서 엄마는 맘이 참 편해.” 친정엄마가 그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근심이 컸을까. 죄송해서 먹먹 했었다.

2015년 이후 관리를 않던 내 블로그에 며칠 전 접속해 보니 방문자에 눈에 익은 닉네임이 적혀 있었다. 나에게 화양연화를 선물해 준 이였다. 그를 안 본 지도 십수 년이 흘렀다. 같은 편에서 같은 시공을 나누다 <건너편>으로 멀어져간 사람들.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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