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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당신의 컨텐츠/영화리뷰

영화 기생충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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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 청량리 롯데시네마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다. 72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 수상, 칸 현지 영화 상영 후 8분간 기립박수.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저린 이코노미클라스 증후군이 약하게 왔고 내용의 찜찜함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심사위원들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느낀 것이다. 영화가 내 취향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 특히 예술 분야는 더 그렇다. 서른 즈음부터 5~6년 간 영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쉬는 날에는 개봉영화 한 편에 비디오 영화를 2편씩 보곤 했다. 화면 하나, 대사 하나에 감독이 표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요한 메타포와 맥거핀은 무엇인지, 트리거로 작용하는 것이 핍진성이 있는지, 클리셰를 벗어나 얼마나 참신한지, 미장센은 어떤지...

봉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도 계급 간 격차를 그려냈다. <기생충> 역시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저택에 사는 IT 기업가 가족, 반지하에 사는 백수 가족, 그보다 더 아래 벙커에 사는 가족을 통해 계급 간 장벽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관객이 등장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관찰자가 되도록 이야기를 끌고 간다.

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주목했다. 기택(송강호 분)은 반지하 창문을 통해 취객들이 창문 바로 옆에서 노상 방뇨하는 걸 봐도 뛰쳐나가 시비 붙지 않는다. 피자박스 접기 달인 동영상을 보며 부업인 박스 접기를 열심히 하지만 모두 불량이다. 아들과 딸이 문서를 위조해 고액과외 면접을 보러 가도 서울대학교 문서위조학과가 있으면 수석 하겠다.”든가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그런 기택이 결말 부분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사회의 바닥으로 몰린 기택의 자괴감과 울분이 드러나는 장면은 두 군데다. 아내 충숙(장혜진 분)이 바퀴벌레 같다고 하자 무서운 표정으로 아내의 멱살을 잡았을 때와 타의에 의해 인디언 추장 깃털 모자를 쓰고 박 사장(이선균 분)에게 우회적으로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을 때. 모멸감과 자괴감과 배신감... 컴플렉스를 느끼는 송강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역시 표정 연기가 압권인 배우다. 박 사장은 자기 아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손가락으로 코를 막아 하층민의 냄새를 못견뎌 하는데기택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하는 트리거로 작용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박사장이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나를 알아요? 묻는다든가 코를 막는다든가... 가능키나 한가?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 분) 역시 자기 집 유리창 바로 옆에 노상방뇨를 하는 취객에게 달려들지 못한다. 군 입대 전 2, 군 제대 후 2번 재수를 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4수를 할 만큼 대책 없는 기우가 대저택에서 기죽지 않고 일련의 거짓말도 능숙하게 해대는 인물이 될 수 있을까. 대략 스물 일곱 해를 지지리 돈이 없는 세상을 살았는데? 무계획인 기택을 대신해서 산수경석을 싸들고 끔찍한 계획을 실천하려는 인물로 바뀔 수 있을까.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배우 최우식이 인간 내면의 사악한 욕망과 그 욕망이 광기로 변하는 연기를 참 잘했음에는 이의 없다.

등장 인물 어느 누구도 선하지 않다.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악한 본성을 까발려 놓았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거만하고 비굴하며... 내 안에도 존재하는 추악한 본성을 본다는 게 괴로웠는지 모르겠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나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 연상됐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유를 검색해 보았다.

1.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끌어가는 이야기의 힘. - 인정한다.

2, 장르의 넘나 듬. - 인정한다. 블랙코미디가 스릴러로 변한다. 봉감독이 밝혔듯 난장판이 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박 사장네 집사였던 문광(이정은 분)의 등장은 장르를 바꾸는 강렬함이 있었다. 이정은 배우의 연기력에 리스펙트!

3, 빈부의 격차, 양극화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 잘 모르고 넘어갔다. 계층 간 격차를 냄새, , 계단 등의 이미지로 표현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바퀴벌레처럼 탁자 밑에 숨고 비를 쫄딱 맞으며 쫓기고 끝없이 계단을 내려와 물에 잠긴 집에 돌아온 기택, 기우, 기정을 보는 것이 살짝 괴로웠다. 박 사장이 계속 선에 대해 말하고 고용인들이 선을 넘는 것을 불쾌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단지 영화 속 장면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내가 고생을 덜해서 일까. 나 역시 분명 흙수저인데 흙수저로 대접받은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일까. 60년대 생인 내 세대만 해도 개천에서 용이 났다.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단다. 양극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4. 대사와 소품에 얽힌 메타포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 이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산수경석, 냄새, 인디안, 모르스 부호, 계단...

영화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페이소스를 느낀 장면은 기우가 부자가 되어 기택을 구하는 장면이다. 대저택의 지하 계단을 걸어 올라온 기택이 밝은 곳에 서 있는 기우와 만나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럴 일이 없으리라는 걸 안다. 기우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가난한 자와 부자 이걸 따지기 전에 인간의 존엄에 관한 스토리다. 인간에 대한 예의, 그런 맥락이 있다.” - 봉준호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지는가기생이 아닌 공생을 할 때 지켜지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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