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저 재미있게 말할 상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가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할 때,
본 적도 없는 남편에게 연민을 느꼈다.
생각이 어린 아내랑 사느라 참 힘들겠구나.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 하는 거 같았다.
멋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나는, 좋은 상담가는 아닌 것이다.
나는 고독이라는 친구를 좋아한다.
내 친구들도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있는 시간에 여기저기 연락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충만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관계로는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 고독’을 잘 다뤘으면 좋겠다.
'근원적 고독'을 버거워하는 그녀에게
내가 짧은 시간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었나 보다.
그녀는 비슷한 레퍼토리로 전화를 하곤 했다.
10분이 넘어가는 통화는 사양하고픈 나는,
틈틈이 ‘그래 다음에 만나자’라고 마무리를 시도하지만
그녀는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이어간다.
“너랑 통화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 너무 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그 말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생존본능으로 사회성이 심하게 발달해 버린 나는,
“나도 보고 싶다.”라고 해야 하는 걸 알고 또 그렇게 대처하며 살아왔지만
근래에는 그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덧붙였다.
“내가 너에게 의지하고 있나 봐.”
내가 그녀를 그렇게 길들인 것이고
어린왕자의 여우에 의하면 길들인 것에는 책임이 있는 것인데,
나는 이제라도 그 책임을 덜고 싶었다.
결국 그녀에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아무도, 그립지, 않다고.
긴 통화보다는 가끔 씩의 안부 문자,
한두 달에 한 번, 반갑게 만나 즐거운 걸로 충분하다고.
부정적 기운이 가득한 다람쥐 챗바퀴 레퍼토리로부터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지키는 일이라고 합리화하다가도
내 개인주의 성향에 상처 받았을 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처음 보는 사람, 처음 가는 장소에 낯가림이 거의 없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먼저 상대의 편리를 챙겨주는 편이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히 친밀하고 싶다는 뜻은 아닌데
훅~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발화한 언어와 행동이
내 의도와 다르게 타인에게 수신된다면,
내 친절을 자제할 필요도 있겠다고, 깨달은 지는 얼마 안된다.
느슨한 연대.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상대가 좋은 사람일 거라는 기본값을 깔고 호의를 베풀되 오지랖은 떨지 않기.
서로의 안녕을 빌지만 내 안녕을 위해 도를 넘는 부탁은 하지 않기.
소통하며 즐겁지만 단절 되도 상처받지 않기...
가끔 애드센스 수익을 위해
블로그 운영을 이렇게 저렇게 해라 댓글로 조언하는 사람도 있더라.
(댓글 말고 자기 블로그에 포스팅 하세요~^^)
대표적인 느슨한 연대가 블로그 이웃들 같기도 하다.
단절 되도 상처를 받지는 않는데 그래도 잘 지내나 궁금하다.
단절된 이웃들, 멀리서 안녕을, 매일의 파이팅을 기원한다.
(되도록이면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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