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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낙선작, 나를 일으킨 자장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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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에서 매달 공모하는 나도 에세이스트에 응모했다 낙선했습니다.

다음에 쓰고 싶은 주제로 공모되면 또 도전해보렵니다.

아래 이야기 속 어머니는 딱 저 사건 때만 약한 모습 보이셨지,

다른 때는 제가 반항할 때, 얄짤 없으셨어요.

그 따위 인성으로 배워서 뭐하냐! 학교 가지 말아라! 그러셨죠.

어린 시절, 왜 그렇게 엄마에게 함부로 굴었는지요.

근데 가족들이 엄마랑 기질이 가장 많이 닮은 게 저라고들 합니다^^  


제목 : 나를 일으킨 자장면 한 그릇

 

 ‘덤덤 무슨 덤 미련둥이 순둥이’.

 어린 시절 가족들은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을 개사해서 저를 놀리곤 했답니다.

14녀의 넷째 딸인 저는 삼신할머니가 덤처럼 얹어준 자식이라고요.

유년기의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했고 미련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말씀하셨죠.

 “다른 애들은 에비! 뜨겁다! 만지지 마!’ 하면 안 만지는데

너는 꼭 만져보고 뜨거운 걸 확인했어. 그래서 미련둥이라고 부른거야.”

 

일곱 살 때 동갑인 윤정이가 우리 동네로 이사옵니다.

하루는 윤정이 집에서 놀고 있는데 윤정이 아버지가 윤정이에게 받아쓰기를 시킵니다.

네모나게 칸칸이 나눠진 공책에 윤정이가 척척 글씨를 쓰더군요.

윤정이 아버지가 제게 물었어요. “너도 받아쓰기 해 볼래?”

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지요. “저는 글을 몰라요......”

바로 집으로 돌아와 소리쳤어요. “나도 깍두기 공책 사 줘! 나도 글 배우고 싶단 말이야!”

그러나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제가 한 공부는 이름 석 자 쓰기,

하나에서 열까지 세기, 일부터 백까지 쓰기가 전부 였습니다.

 

학교에 입학해 보니 참으로 신세계였습니다.

집에서는 미련둥이라고 놀림 받았는데 학교에서는 재치 있다는 겁니다.

여덟 살이 되도록 한글도 모르던 제가 4학년 때는 일등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건 우리집이 무척 가난하다는 거였어요.

고만고만한 달동네 친구들이 아닌 학교 친구들과 비교라는 걸 하게 된 거죠.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엄마가 화사한 얼굴로 맞아주고 과자와 우유를 내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박봉의 인쇄공이었기에 오남매를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엄마가 공사장에서 모래 지어 나르는 일과일 행상, 신문 좌판 등을 했습니다.

어느 겨울 날, 쩍쩍 갈라져 피가 말라붙은 엄마의 뒤꿈치를 보고

가난한 부모에 대한 속상함, 고생하는 엄마에 대한 마음 아픔,

왜 나는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나 하는 억울함의 감정이 일어났지요.

서른 중반의 어머니와 일곱살 연상 아버지

중학생이 되면서 저는 아동기의 알을 깨기 시작합니다.

알이 깨지며 날카로운 파편을 사방에 튀기게 되는데 특히 엄마의 가슴에 수 없이 박힙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임원 엄마들이 학급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학급 운영비를 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반장 엄마 자격이 있어? 학급 운영비도 못 내고......

제대로 뒷바라지 못할 거면서 왜 낳았어?”

모진 말을 뱉고 나서 몰려드는 자괴감, 우울감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누워있었지요.

네 끼를 굶고 나자 엄마가 자장면을 한 그릇 사 오셨습니다.

오남매인데 달랑 한 그릇 살 돈 밖에 없으셨겠지요.

일어나 자장면 좀 먹어봐......

엄마는...... 너희들 보고 힘내서 일하는데 네가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흐흑......”

생전 처음 듣는 엄마의 울음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얼른 몸을 일으켜 자장면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자장면 그릇에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여행 경비 전액 내가 부담하고 모시고 간 세부에서.

인생길 어려움을 만나면 엄마의 사랑과 응원이 담긴 자장면을 생각합니다.

자장면 한 그릇이 전해준 크나큰 위로를 떠올립니다.

몇 해 전,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결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 모든 자존심, 남의 시선 다 내려놓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기로 결정한 거였지.

내 아이들에게는 나 같이 무식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삶은 면하게 하자 매일 다짐했어.”

엄마의 바람대로 오남매는 학원 원장, 기획 팀장, 은행원 등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답니다.

노래 가사처럼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주신 나의 엄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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