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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4월은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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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공부에 푹 빠져서 굳어 있던 뇌를 너무 혹사한 것 같다.

하루에 여섯 시간을 자는데도 현기증이 났다.

여덟 시간씩 수면을 취하니 현기증은 사라졌다.

남편이 힘내라고 장어를 사줬다.

< 남편과 장어마을에서, 복분자 한 잔도 곁들여 >

공부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수 있다.

요즘 챙겨 먹는 약들이다.

분홍색은 비타민B군과 비타민 C(비올-씨 정), 노란색은 잇몸약(덴타자임 캡슐),

밤색은 사유(헉! 뱀기름)성분이 함유된 눈 영양제(아이플러스 연질캡슐),

자주색은 마그네슘이 든 혈액순환제(쎄토마 연질캡슐).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아침은 먹지 않고 양배추즙과 생강계피꿀차를 마신다.

출근해서 청소를 마친 후 행복한 간식 시간을 갖는다.

찐 고구마, 구운 계란, 사과, 바나나, 딸기, 오렌지... 등을 먹는다.

 

어느새 검고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흰 꽃들이 망울을 터뜨렸다.

봄을 틔워내느라 가지들은 얼마나 간지러웠을까.

< 20일 퇴근길에 치악체육관에서 만난 꽃 나무 >

며칠 후면 4월이다.

서른 즈음부터 ‘4월은 잔인한 달인 걸, 느낄 수 있었다.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내가 다 이해할 수 없고 해석 역시 내 멋대로다.

그러나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향유하는 독자의 것임을 우리는 안다.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시의 도입부(프롤로그).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쿠마의 무녀(예언자)는 신화 속의 인물 시빌이다.

태양신 아폴론에게 먼지 한 움큼이나 되는 삶을 구하여 허락받았지만 젊음을 구하지 않았다.

몸이 쪼그라들어 새만큼 작아져서 조롱 속에서 살고 있단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은 채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snow)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삶을 연명하게 해 주었다.]

 

죽은 땅과 잠든 뿌리를 깨우는 봄의 생명 에너지는 얼마나 강한 것인가.

조롱 속 무녀의 몸은 쪼글쪼글 쪼그라들었지만

젊음의 추억과 욕정은 사그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 어쩌란 말이냐. 조롱 속에서도 꿈틀대는 생의 에너지를.

“(봄의 에너지를 맘껏 발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고 싶어.”

봄이 되면 시냇물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도랑물도 노래한다.

봄바람에 아가씨만 설레는 것이 아니다. 조롱 속 무녀도 설렌다.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듯,

실연을 당하려면 사랑이 있었어야 된다.

실연이 달콤함일 수 있는, 달관의 나이가 되었다.

더 이상 실연도 기대하지 않는, 관조의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

 

하여,

4월은,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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