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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배려하는 부부로 늙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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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 봄 가을에 시부모님을 모신 성환 천주교 추모공원에 간다.

올봄엔 330일 토요일에 가게 되었다.

수요일에 미리, 전을 부치기 위한 동태포, 통북어, 사과, ...등을 샀다.

금요일, 퇴근 후 지친 몸, 부은 다리로 서서 전을 부쳤다.

거한 제사상을 차리지 않음에 감사하며.

 

남편에 의하면 15년 넘게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은 항상 맑았다고 한다.

30일 토요일은 많은 비와 눈이 예보되어 있었다.

성환으로 가는 길, 해가 났다가 비가 오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나 성환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날이 갰다.

남편은 비가 오면 아들이 힘들까봐 부모님이 맑은 날씨를 주셨다고 했다.

관리사무소에 마련된 조화 꽃가게에서 예쁜 꽃을 골라 계산했다.

깔끔하게 관리된 추모공원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올해는 한식이 일러서 벚꽃이 아직 피지 않았다.

 

정성스럽게 묘를 돌보는 남편을 보면, 애잔하다.

남편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라고 자주 말한다.

성묘를 마친 후 대구로 향했다.

남편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셨던 사촌 형님이 사는 곳이다.

남편은 고마움을 잊지 않고 선물과 용돈을 챙겨드리고 싶었나 보다.

730분쯤 대구에 도착했다.

남편은 사촌 형님께 선물을 드리고 올 테니 내게 10분 동안 기다리라고 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씨였다.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거나 건물 안에 들어가도록 배려해 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남편은 차에서 빨리 내리라고 재촉했다.

어둡고 낯선 아파트 단지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가

단지를 벗어나 걷고 걸어서 이마트 건물을 찾아 들어갔다.

 

남편은 여자에 대한 배려를 익히지 못한 것일까. 나에게만 이러는 것일까.

서운했던 일들이 마구 떠올라 나를 좀 존중해 달라고 격앙되게 말했다.

내 격앙의 열 배나 큰 고함을 들어야 했다.

겨우 10분도 못 참고 딴 데로 갔냐고

남편이 혈압으로 어떻게 될까봐 걱정됐다.

 

밝은 건물 안에서라면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

이 생각 저 생각 몽상하면서 기다리는 건 내 특기니까.

10분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다. 이 미묘함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남편이 나의 부모님을 잘 챙겨주는 거, 참 고맙다.

그러나 다른 어떤 무엇보다 존중의 언행을 해 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며칠 전에는 한밤중에 거실에서 남편이 팔짱을 끼고 자고 있길래 추워 보여서

차렵이불을 옆에 펴 주려는데(덮어 주면 짜증을 낼 수 있으니까...)

됐어 됐어! 들어가 잠이나 자!”

 

남편은 됐어 됐어. 저거나 해.” 등과 같은 언행을 할 때가 있다.

발렌타인데이에 카카오톡으로 페레로로쉐 초콜렛을 선물했을 때 남편의 반응.

"에이! 귀찮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한 모멸감을 느낀다.

 

대구에서 일박하려던 것을 바로 원주로 달렸다.

눈과 비가 쏟아붓는데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릴 때는 맘이 조마조마했다.

10시 반에 도착한 원주에서 남편은 족발을 테이크아웃했다.

물만 마시고 자고 싶었는데, 11시에 족발을 먹었다. 맥주도 마셨다.

남편의 성의임을 잘 알기에 먹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맛있다며 먹었다. (그 상황에서도 주책없이 맛이 있더라.)

화해의 마음을 전하는 남편이 고마웠다.

 

근래에 독하게 마음먹고 저녁 7시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14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중이다. 1.5킬로그램 감량했다.

앞으로 3킬로그램 더 감량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도 족발을 먹었다.

 

다음 날, 나는 배가 아팠고 남편도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다.

아침을 원래 먹지 않는 남편은 점심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죽이라도 먹어야 힘이 날 텐데 걱정스러워서

죽집에 전화를 해 보니 일요일 휴무인가 보았다.

죽을 쒔다.

북어로 육수를 내고 양파와 당근을 다지고 콩나물을 썰어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30분 넘게 계속 저어가며 죽을 쒔다.

마지막에 직접 짠 참기름과 깨소금, 김 가루를 뿌렸다.

꽤 맛있게 만들어졌는데, 남편은 맛도 안 보고 먹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족발을 먹었고 남편은 죽을 먹지 않았다.

나는 내 편의를 위해 남편을 찬 바람이 부는 어두운 곳에 단 5분도 세워 놓지 않을 것이다.

 

내 배려의 마음이 남편에게 따뜻하게 가닿기를.

남편도 그렇게 나를 배려해 주기를.

그렇게 서로 배려할 줄 아는 부부로 늙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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