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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추석 아침 식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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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화단에 정성껏 가꾼 토마토는 여름 내내 다 먹기 버거울 정도로 맹렬히 열매를 맺었다.

며칠 전,

찬바람이 불어 시들기 시작한 토마토 대를 뽑아 마당에 쌓아 둔 남편이 운동을 나가며 말했다.

날순아~ 햇빛에 앉아서 토마토 대를 잘게 썰어 놔라.

니가 너무 햇빛을 안 보니까 이렇게라도 햇빛을 쬐라는 거야.”

으응? 나도 나름 산책을 다니고 있고만! 그냥 심부름 시키는 거 아님?^^

예썰~! 오빠 운동 다녀오면 모조리 잘게 썰린 토마토 대를 보게 될 겁니다!!” 

 

미니 작두로 20분 동안 내가 썰어 놓은 토마토 대가 저 정도다.

등이 아파서 스트레칭 후 다시 썰고 5분 후 다시 스트레칭하고...

콩쥐가 된 기분이 들었다. 40분 간 썰다가 그만 두었다.

오래전 척추뼈 T9, T10의 압박골절 후 조금만 무리해도 등이 아프고 식은땀이 났다.

통증 앞에 모조리 썰어 버리겠다는 기개는 말끔히 사라졌다.

 

운동 후 귀가한 남편에게 선수 치며 말했다.

오빠~ 40분 동안 썰었는데 등이 아파서 식은 땀이 났어욤~ 내일 계속 할께요~”

에효~ 그런 저질 체력으로 어떻게 살아갈래?”

내겐 만능 해결사 오빠가 있잖아~!

내게 책 백 권을 줘 보세요.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쉬지 않고 읽어 버릴 테니까.”

늘 그렇듯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나머지는 남편이 했다.

젊은 날의 나였다면 아래와 같이 반응했을 거였다.

토마토 대를 자르라고? 나 할 일 엄청 많으니까 오빠가 좀 해! 읽고 싶은 책이 잔뜩 쌓였단 말야!!”


추석날, 830분에 차례를 지내자던 남편이 8시가 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음식을 다 차려 놓고 남편을 깨웠더니 화들짝 놀라서 깼다.

변변한 제기도 없고 모양도 쏘쏘한 차례상인데 남편은 만족해 한다.

 

남편은 부모님께 절을 올린 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 어머님~ 날순 며느리가 밥이 떡이 되게 했는데 그래도 맛있게 드세요~

날순 며느리가 인터넷으로 달러를 벌어서 이렇게 상을 차린 겁니다.

중국에 출장 간 00(아들)도 잘 보살펴 주시고................................”

남편이 차례 상 앞에서 인사를 할 때면 소리 죽여 웃곤 한다.

나름의 유머로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리라.

남편의 인사가 끝나자 나도 차례 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시부모님 천국에서 편안히 안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00(남편) 건강 주시니 감사합니다. 중국에 있는 00이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남편이 말했다.

남편 : 요란한 꿈을 꾸느라 피곤해서 그런지 늦잠을 잤구나.

: 무슨 꿈을 꿨는데요?

 

남편 : 날순이랑 맛집을 찾아 헤매는 꿈이었어.

근데 그 맛집이 두어 달 전 꿈속에서 갔던 곳이었지.

꿈을 꾸면서 생각했어. 두어 달 전 꿈속에서 갔던 곳인데 찾을 수 있을까?

맛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 크다니. 내가 참 한심하더구나.

 

: 오빠랑 나랑 유일하게 공통된 취미가 맛집 다니는 거였으니까~

우리 정말 외식 너~무 많이 했어. 둘이서 참치나 장어 3~4인 분을 먹어 치웠으니.

잦은 외식과 폭식은 건강에 정말 안 좋은 거 같아요.

나는 오빠가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남편 : 죽고 사는 문제를 풀면서도 꿈속에서는 맛집을 찾아다닌 거야. 얼마나 한심하냐.

 

: 오빠. 나한테 책 선물해 주는 박집사 알죠?

그 친구가 며칠 전, 최재천 교수님의 통섭의 식탁이란 책을 보내줬어요.

그 책에 위화의 인생이란 소설 소개가 나와요.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반했던 작가거든요. 당장 전자책으로 다운받아 읽었지요.

 

삶에는 선이나 악이 없는 거라고. 그냥 살아가는 게 삶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어요.

작가는 자신이 고상한 소설 한 편 썼다고 말하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겠지.

삶에 선과 악도 없을진대 한심한 건 더 없는 거지. 안그래?

남편 : (두어 잔 반주로 기분이 좋아져서) 날순이에게 깨달음을 준 아주 좋은 책이로구나.

 

: 소설 원제는 활착(活着:-)이야.

옮겨 심겨진 나무가 새로운 터전에 뿌리를 내리며 적응해서 살아가는 걸 뜻해요.

최재천 교수님도 말했지만 인생으로 해석하면 그 맛이 안 살아요.

살아가는 것더 나아가 살아지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비슷할까.

명사 인생으로는 주인공 푸구이가 살아낸, ....의 신산을 담아낼 수 없어요.

푸구이는 말이죠.....................................................................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

이 소설에서 나는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에 관해 썼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 1993. 7. 27. 하이옌에서 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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