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주일 아침, 서울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원주역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관광안내소에 비치된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거기서 제12회 원주 용수골 꽃양귀비 축제 전단지를 보았다.
십 여 년 전 귀농한 김용길, 이명선씨 부부가
300평 대지에 심기 시작한 꽃양귀비가
올해는 4만 1천여 제곱미터에 심겨져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압화 부채 만들기, 엽서 만들기, 양귀비 사진 콘테스트 등 놀거리,
감자전, 메밀전, 도토리묵, 국수 등 먹거리도 푸짐하단다.
그제. 월요일에 남편에게 물었다.
"용수골에서 6월 9일까지 꽃양귀비 축제를 한대요.
수요일에 일 일찍 끝나니까 같이 갈래요?
당신은 거기서 사진 한 장 찍고 볼일 보러 가세요.
난 거기서 실컷 꽃구경하고 놀다가 32번 버스 타고 나오면 되니까."
남편은 늘 참참참 바쁘다.
원주도 평창도 단독 주택이라 손봐야 할 게 항상 넘쳐난다.
페인트칠, 철판 절단, 전기배선 공사, 기름 보일러 수리, 경운기 수리...
모두 혼자 해낸다. 리스펙~!!
황가이버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게다가 이번 수요일에는 자동차 앞유리 수리를 맡긴다고 했다.
어제, 다시 남편에게 말했다.
"알아보니까 32번은 하루에 딱 5번만 운행한대요.
축제는 내년에도 할테니 내년에 가요."
"아니야. 자동차 수리는 다음에 하고 꽃구경 가자구.
날순이 컨텐츠가 풍부해야 글을 쓸테니."
드디어 오늘, 수요일.
서둘러 가게 문을 닫고 네비도 찍지 않은 채 남편이 차를 달렸다.
원주시에서 오 분 정도 달리자 논과 밭이 펼쳐졌다.
저마다 초록 잎을 너울대며 자라는 싱싱한 작물들.
멀리서 보는 시골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힐링을 준다.
아무리 오전이라도 여름 뙤약볕 아래 풀을 뽑으며
땀을 한 말이나 흘려 본 나로서는 농사는 멀리서 보기만 하는 걸로~
축제장을 잘 찾을 수 있나 우려하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날순이도 갔던 곳인데 기억을 못하지? 백운산 휴양림 있는 곳이야."
백운산 휴양림은 세 번 정도 갔던 곳이다.
너어~무 심한 길치라는 특별함이 내게 있다.
평일이라 인파 없이 여유롭게 꽃구경을 했다.
'싸나이는 거침없이 빠르게 직진한다~
보조 맞추기 따위, 개나 줘 버려~'
남편은 자주자주 앞서간다. 내가 총총 따라가면 그뿐.
오래전, <플라워 바이 겐조>라는 향수를 쓴 적이 있다.
향이 좋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병 디자인에 매혹되어서.
꽃양귀비는 줄기에 솜털이 촘촘히 나있다.
마약의 원료인 양귀비는 줄기가 매끈하다고 한다.
멀리서 볼 때는 보라색 도라지 꽃인 줄 알았는데
수레국화라고 한다.
보라색은 신비하다. 보라와 분홍의 조합을 좋아한다.
일흔은 되어 보이는 사진사 할아버지가 앉아서 졸고 계셨다.
남편이 여러 번 불러서 깨웠다.
내가 5천 원 짜리로 뽑자고 했는데 남편이 만 원 짜리로 하잖다.
사진사 할아버지의 수입을 위해 그러는 것일 게다.
할아버지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포토 포인트로 이동했다.
할아버지가 플라스틱 의자에 올라서자 의자가 살짝 삐걱거렸다.
걱정스러웠다.
별 사인도 없이 할아버지가 사진을 세 번 정도 찍었다.
나는 눈을 되도록 크게 뜨고 팔자 주름이 지지 않게 웃지 않았다.
"액자에 넣어 줄까요?"
액자값이 만 원이었다.
그냥 사진만 받으려는 나를 만류하며 남편이 액자값을 냈다.
연애 시절, 남편의 이런 여유롭고 따스한 마음에 반했던 것이다.
남편의 지인이 남편의 어디가 마음에 드냐고 물었었다.
“인품이 어른스럽고 마음의 키가 큰 거 같아요.”라고 대답했었는데...*^^*
행사장을 나와 행사장 맞은 편에 위치한 유명 맛집 서곡막국수 집으로 향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자 잘생긴 소나무와 수량이 적어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계곡이 보였다.
전통 막국수, 도토리묵, 치악 생막걸리를 주문했다.
치악 생막걸리는 언제 마셔도 맛있다~
도토리묵은 자고로 살짝 쌉싸름한 맛이 돌아야 제맛인데 전혀. 그냥 맹숭한 맛.
게다가 간이 거의 안 되어서 다시 무쳐달라고 했다.
전통 막국수는 간도 맞고 시원하니 맛있었다.
“날순이랑 여기 와 보지 않았나?”
“난 처음인데? 나 만나기 전에 다른 분하고 왔었나보죠~”
남편의 동공이 슬쩍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었다.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먹어.”
“좋은 구경하고 맛있는 막국수 한 그릇 먹는 거,
이런 게 행복이지, 행복이 별건가~”
“그러게 말이다.”
눈 호강, 입 호강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자동차 수리를 맡기고 돌아와 집안 수리를 시작했다.
나는 카페 닥터 허로 와서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며
기억 속에서 다시 한번 꽃양귀비 축제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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