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리브나무입니다.
그제. 최은영 작가의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을 만났습니다. 주방 일을 하며 전자책 듣기를 하다가 자주 멈춰 서서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슬픈 사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제 마음을 헤집었습니다. 주방 일을 서둘러 마치고 전자책을 눈으로 읽었습니다. 저의 예민한 촉수가 소설 속 아름답고 슬픈 장면들을 흡수해서 눈물로 쏟아냈습니다. 대한민국 소설계의 거성 오정희님은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주는 더 큰 슬픔의 힘’이라고 평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검색해 보니 최은영 작가는 『밝은 밤』으로 2021년 11월 3일 대산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더군요.
밝은 밤 리뷰 줄거리
서른두 살인 지연이가 1959년 생 엄마 미선, 1939년 생 할머니 영옥, 1921년 생 증조할머니 정선(삼천이)의 삶을 조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히로시마 원폭, 6.25전쟁을 오롯이 겪어내며 신산했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백정의 딸이었기에 사회적으로 잔인한 차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남편들은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가 당연한 사람들이라 가정에서 조차 폭력적 차별을 감내해야 했지요.
2017년 지연이는 남편의 외도로 여섯 해의 결혼생활을 끝냅니다. 서울 집을 정리한 후 바닷가 마을 희령으로 이사합니다. 희령은 지연이 열 살 때, 열흘 간 머물던 외할머니가 살던 곳이었고 지연이 새로 취직한 천문대가 있는 곳입니다. 지연은 이십 년 넘게 보지 못했던 외할머니 영옥을 만납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었지요.
할머니 영옥은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분입니다. 지연에게 걱정 끼치거나 아픈 모습 보여주기 싫다고 말하죠. 영옥은 이십 년 만에 만나 손녀에게 박대를 튀기고 배추국을 끓여 대접하면서 살가운데 왜 엄마와 척을 지고 사는 걸까요.
영옥은 지연에게 지연의 증조모이며 자신의 엄마인 삼천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지연과 삼천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황해도 삼천에서 백정의 딸로 태어난 삼천이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일곱 살에 열아홉의 증조부 박희수를 따라 개성으로 갑니다. 박희수는 운명처럼 삼천에게 끌렸고 천주교도였기에 백정의 딸이라도 상관없다며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고 도망치듯 개성으로 갑니다.
작가는 그런 희수의 행동이 영웅적 심성 때문이 아니라 순간의 허영심이었다고 서술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포기한 부모형제와 부요함을 그리워하며 삼천이를 원망합니다. 자신의 딸 영옥이 “너네 엄마 백정이지!” 놀림 받을 때 기껏해야 ‘계집은 씨를 받아 키우는 밭일뿐이다. 너는 내 씨니까 너는 양민이다.’ 라는 말을 합니다.
지은 : 너무 했네요.
영옥 : 너무 했지.
자신이 한 말이 너.무.한. 폭.력.인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 박희수. 삼천이는 남편이 최악의 모습을 보일 때마다 딸 영옥에게 말합니다. “그래도 네 아빠가 일본군에게 끌려갈 뻔한 나를 구해줬어. 네 아빠가 구해줬어.”
묵묵히 남편을 견디던 삼천이 희수가 크게 상처 받은 딸 영옥에게 더 큰 상처 주는 말을 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듭니다.
- 한 번 더 그런 말 했다가는 당신 내 손에 죽습니다. 영옥이한테 그따위 소리 할 거
면 내 눈앞에서 꺼지란 말입니다.
-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그따위 말을 하는 기야? 내가 아니었으면 넌…………
- 기래요, 당신 없이 나 살기 어려웠을 깁니다. 내 그래 당신 고마움 모르는 사람 아 니요. 내 당신 그늘 아래서 여태 별 탈 없이 살았으니. 기래서 내를 빚쟁이 대하듯 했시까. 내레 당신한테 기렇게 빚을 졌다구.
- 어디 서방 앞에서!
- 내가 당신한테 도망가자 했시까, 내가 당신 부모 저버리라 했시까, 내가 당신보고 혼인하자 했시까. 기런데 왜 내를 일평생 입 닥치고 살게 했시까? 내 죄가 뭐인데, 백정네 딸로 태어난 게 죄라면 내 죄를 죄로 두지 기랬어요. 우리 영옥이, 내 살같은 영옥이를 쥐 잡듯이 잡고 화풀이하고 이렇게 다친 아이를 말로 두드려 팰 거면, 이 꼴을 내 눈으로 보게 할 거면, 내를 기냥 삼천에 내버려두지 기랬어요. 내를 당신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내버려두지 기랬어요.
할머니 영옥과 엄마 미선, 엄마 미선과 딸 지연의 모녀 갈등은 이야기에 깔려서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딸이 아쉬운 엄마, 엄마의 기대가 버거운 딸,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 하는 딸,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엄마...
그러면서도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 영옥과 희자(새비 아주머니 딸)와의 연대와 우정은 슬프도록 아름답게 빛납니다. 매 장면을 다 소개하고 싶지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저 역시 로마의 서늘한 카타콤베에서 봤던 백골이나 한국 고찰의 이끼 낀 부도탑을 봤을 때 가벼워졌습니다. 점보다 못한 인생에서 깊디 깊은 상처나 삶의 무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위로였습니다.
최은영님의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새해 첫 날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소개 할 수 있어서 좋네요.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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