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가씨가 내려오셨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내게 ‘언니’라며 존대하는 아가씨.
작년 12월, 서울 아산 병원에서 만난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아가씨는 노환인 시어머니를 모시는 중에도
남편이 아산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으로 찾아와 함께해 주었다.
큰 병원 시스템이 낯선, 어리바리한 나 대신 일 처리를 해주었다.
전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아픈 이들이 찾는 곳,
서울 아산 병원은 거대한 유기체 같았다.
아가씨는 식사하고 갈 테니 다과만 준비하라고 했다.
나를 배려해서 하는 말이라 잠깐 고민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요리 솜씨는 좀 아닌 거 같고
남편은 먹지도 않는데 기름 냄새 풍기며 음식 만들기도 그렇고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는 게 좋겠다 싶었다.
외식할 생각 하니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나라를 휩쓰는 전염병과
가정에 덮친 우환에도 식욕이 그대로라는 게 참.
그러나 외식은 전염병이 진정 좀 되면 하기로 하고
그야말로 다과만 대접하게 되었다. 이를 어쩔.
커피향을 좋아라 하는데 커피를 마시면 속쓰림이 있어서 절제한다.
어제처럼 비가 오는 날은 커피를 참기가 힘들다.
향기라도 즐기려고 책상에 원두 가루를 놓아둔다.
고소한 향이 4~5일은 가는 것 같다.
오늘은 절제하지 않고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
아가씨는 깔끔한 핫 아메리카노,
나는 쫀쫀한 우유 거품과 시나몬 가루가 매력적인 카푸치노.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에 홀랑 반해서
저렴한 우유 거품기를 샀었는데 거품은 잘 났지만
카페의 거품처럼 쫀쫀하지 않았다.
거품 밀도가 높아야 크리미한데.
즐거운 담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남편이 아가씨께 서울 가기 전에 정비소에 들르자고 부탁했다.
우리 차를 폐차하기 위해 차에 있던 짐을 빼기 위해서다.
남편 – 00(아가씨)이 오면 짐 가지러 가려고 했지.
나 – 오빠는 계획이 다~ 있구나~
차에서 짐을 빼다가 지난 여름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양산을 발견했다.
양산이 반가우면서도 깨끗하게 삭제된 기억이 신기했다.
다시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준 아가씨.
“언니, 다음에 또 봐요.
냉장고 옆에다 봉투 하나 뒀어요~ 언니 커피 사 드시라고요.”
지난번에도 거금이 든 봉투를 두고 간 아가씨다.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아픈 오빠를 보기 위해 먼길 오가는 게 안쓰럽고
달랑 다과만 대접한 게 미안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편이 쾌차하고 좋은 일로 만나길 기대, 고대,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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