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송이 붉은 연꽃 -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

책 제 목 : 스물일곱송이 붉은 연꽃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

저 자 : 이경혜 다듬이 씀

출 판 사 : 알마

초판 1쇄 : 2007. 4. 3.

 

안녕하세요? 올리브나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의무 교육을 받은 분들이라면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를 다 알고 있을 겁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신분 차별을 고발하고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굶주리는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들의 통쾌한 이야기였지요.

 

소설을 통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급진적인 평등사상을 주장하던 허균은 굴곡진 삶을 살다가 역모로 몰려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합니다.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은 비운의 여류 시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허난설헌의 한시 스물일곱 편을 쉽게 풀어 쓰고 초등학생 고학년도 읽을 수 있도록 해설한 이경혜님의 ‘스물일곱송이 붉은 연꽃’을 전자책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로 허엽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입니다. 허엽의 첫째 부인이 삼남매를 낳았고 둘째 부인 강릉 김씨가 허붕, 허초희, 허균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세 명은 모두 재기와 글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초당 마을, 초당 두부는 허엽의 호를 따서 붙은 이름입니다. 허난설헌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시집가지 전까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글을 배우고 시를 썼습니다. 오빠 허붕은 여동생의 글 솜씨를 어여삐 여겨 직접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네 뛰는 노래

 

동네 친구들과

그네뛰기 시합을 했지

 

허리띠 질끈 묶고

머릿수건 동여매고

발 굴러 그네를 차고 오르니

반쯤은 신선이 된 것 같았어.

 

바람이

오색 그네 줄을 밀어 올려

하늘 위로 날아가는데

(하략)

 

어린 시절 그네 뛰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으면 반신선이 된 거 같았을까요.

 

허난설헌은 열다섯 살 즈음 명문가인 안동 김씨 김성립과 혼인합니다. 신혼의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는 한시가 있습니다.

 

제목 : 차라리 길가에 버릴지라도 (견흥)

 

귀하고 귀한 순금으로

반달 빛을 아로새겨

노리개를 만들었어요.

(중략)

 

오늘 먼 길 떠나가시는

낭군께 드리오니

제 맘처럼 여기시고

잘 간직해 주셨으면

 

차라리

길가에 버릴지라도

다른 여자 허리에만은

달아 주지 말기예요.

 

길가에 버릴지라도 다른 여자 허리에만은 안 된다는 진솔한 고백이 사랑스럽습니다. 시기나 질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정숙한 여인이 표본이던 시절에 어쩜 저렇게 야무지고 당당했을까요.

 

그러나 차차로 남편과도 애정이 멀어지고 시어머니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하며 외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친정은 풍비박산되고 어린 딸과 아들을 차례로 잃게 됩니다.

 

제목 : 아들을 잃고 통곡하다 (곡자)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는

아끼고 아끼던 아들마저 잃었다.

(중략)

 

그래, 알겠다.

밤마다 너희 오누이 함께 어울려 놀겠지.

 

내 비록 배 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어찌 잘 클 거라고 바랄 수 있겠니.

 

애끓는 노래를 하염없이 부르노니

피 토하는 슬픔에 목이 메는구나.

 

허난설헌은 이렇게 섬세한 감성만을 지닌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승전가를 부르는 장군이 되고 싶기도 했고 모든 것을 초월한 신선이 되고 싶기도 했지요.

 

군사들의 노래 (입새곡)

 

새로

열여섯 고을을 되찾고

 

말안장에 적군의 목을

대롱대롱 매달았네.

(중략)

 

붉은 활에 흰 화살 검은 담비가죽 옷

서슬 푸른 눈매 사냥매가

비단 토시 위에 우뚝 서 있네.

(하략)

 

크게 승전하고 위풍당당 귀환하는 장군의 풍모가 생생히 그려집니다. 적군의 목을 말에 대롱대롱 매달다니! 허난설헌은 무척 쎈 언니였네요.

 

 

바둑 두던 날 (유선사)

 

영롱한 꽃 그림자

옥 바둑판 위에 깔렸는데

(중략)

 

내기에 이겨

시냇가에 매어 둔

흰 용을 얻어 냈으니

(하략)

 

신선들은 바둑판도 옥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기에 건 상품도 돼지나 소가 아니라 흰 용입니다. 흰 용은 옥황상제의 심부름꾼이라고 하네요. (신선님들 클라쓰 보소~) 허난설헌의 고아한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허난설헌의 고운 마음이 도드라지는 한시도 있습니다.

 

가난한 여자의 노래 (빈녀음)

 

얼굴이며 자태며 어디 빠지랴

바느질도 길쌈도 척척이지만

 

가난한 집안에 파묻혀 자라니

중매쟁이라곤 얼씬도 안 하네.

 

추워도 배고파도 아무 티도 안 내고

온종일 창가에서 배만 짜고 있네.

(중략)

 

밤 깊도록 쉴 틈 없이 베를 짜느라

덜그럭덜그럭 차가운 베틀이 울고 있네.

베틀에 걸려 있는 명주 한 필은

누구의 옷이 될까.

(하략)

 

저자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고 유복한 집으로 시집간 허난설헌이 가난한 여자의 노래를 지을 수 있었던 건 애정의 눈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연민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스물일곱의 짧은 생을 마치며 허난설헌은 자신이 쓴 모든 글을 불살라 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천 여 편의 시가 불살라졌을 거라고 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동생 허균은 자신이 외우는 시와 친정에 남아있던 한시들을 모아 유고집을 내게 됩니다. 이 유고집이 중국까지 전해져서 크게 칭송받게 됩니다.

 

허난설헌의 유머와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일화로 소개를 마칩니다.

 

김성립의 절친 송도남은 이름으로 김성립을 놀리곤 했습니다.

“멍석님이 먹석님이 김성닙이 있느냐?”

 

허난설헌은 김성립에게 놀림 대처법을 알려줍니다.

“귀뚜라미 맨드라미 송도라미가 왔구나.”

 

송도남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건 자네 생각일 리가 없어. 분명 자네 부인이 알려 준 거겠지?”

 

자기보다 잘난 아내를 둔 김성립의 열등감으로 부부사이가 멀어졌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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