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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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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도반(남편)은 원주 신림면에 손바닥 만한 땅을 사고 컨테이너 하우스를 들였다. 컨테이너 하우스가 들어갈 진입로 확보를 위해 설치 기사들이 고생고생 했었다.

신림면 컨테이너 하우스, 2년 전 촬영

 

전기는 끌어 올 수 있었는데, 수맥을 찾지 못해서 인부들이 서너 군데 우물을 파다가 포기했다. 이런 일이 있고 한 달쯤 후에 도반은 응급실에 가야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병을 미리 감지했다면 신림에 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다락방이 있는 컨테이너 하우스

 

입원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검사를 했다. 병원 보조 의자에서 선잠을 자다깨다 하던 한밤중이었다. 개별 침대 커튼 너머로 낮게 코드 블루... 코드 블루...’라는 소리가 들렸고 급박한 발자국 소리와 침대 끌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밝자 맞은 편 침대에 있던 환자가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다.

 

검사 후 여러 날을 기다려서 대면한 의사는, 지독히 고약한 태도로 치명적인 병명과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를 말해주었다. 히포크라테스가 그를 봤다면 부끄러워 할 것이었다. 의사 본인도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나서며 도반이 말했다.

난 괜찮으니 걱정 말아. 생로병사는 바람이 불듯 자연스러운 일이야.”

 

인생에 큰 시련이 닥쳤을 때, 우리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그러나 도반은 바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를 위해 그랬을 것이다. 도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우울은 오롯이 혼자 겪어내고 극복해내야 했을 테지.

 

의연한 도반 덕에 나 역시 의연할 수 있었다. 도반은 치병이라는 인생 숙제를 받았고, 나는 치병하는 남편을 도와야하는 숙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도반 : 무서우면 떠나도 돼. 오빤 이해한다.

: (이 양반이 날 뭘로 보고!!) 떠나더라도 오빠 다 나은 후에 떠날 거니까 좋은 생각만 하세요.

 

도반은 병원 치료 대신 자연치료를 선택했고 2년이 지난 지금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고 있다. 초기에는 몸무게가 푹푹 줄어서 여러 모양의 뼈들이 드러났고 꼬리뼈가 바닥에 닿아서 앉아 있기도 힘들어 했었다.

지금은 근력과 체력이 무척 강해졌다. 도반은 자신이 병원 치료를 선택했다면 삼 개월도 살기 힘들었을 거라고 말한다. 

 

지난 여름.

도반 : 신림 땅 말이야. 포동이가 열 평만 일궈주면 좋겠는데.

 

?? 집안 살림도 최소한만 하고 있는데 땅을 일구라고라? 말도 안 돼는 소리라는 의미로 오빠앙~ 날 잘 알면써 그래~”라며 크게 웃었다. 도반은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았다.

 

지난 봄에 신림에 가서 산딸기를 딴 후, 며칠 전에 가보고 놀랐다. 도반이 사부작사부작 많은 일을 해놨더라.

 

화장실 겸 도구 보관하는 곳을 만들었다. 컨테이너 하우스 안에 화장실이 있는데 구태여 실외 화장실을 만들었네. 아마도 물이 귀해서 그랬나 보다.

도반 : 저기다(실외 화장실) 볼 일을 보고 나뭇잎으로 덮어 두면 얼마 후 흔적 없이 사라져버려.

: 고라니가 먹어서??

도반 : 고라니가 개냐? 미생물 분해가 된 거지. 완전 친환경 화장실이야~

: ! 오빠 정말 멋지다!! 평창에 태양열로 난방 되는 제로 에너지 황토방 지었을 때도 정말 멋졌는데. (여름에 찜통인 건 말하기 없긔~)

오롯이 도반 혼자 지은 평창 제로 에너지 황토방. 바로 옆에 전문가가 지은 번듯한 황토방이 있음에도 왜 이러는 걸까^^

 

컨테이너 하우스 지붕의 빗물을 모으는 장치도 했다.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구분해 놨더라.

왼쪽은 농업용수 오른쪽은 생활용수

 

: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빤 정말 맥가이버야!! 황금손을 가진 황가이버님~

도반 : (광대승천, 입꼬리가 올라가며) 뭘 이정도 가지고...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

: 오마야~ 겸손하기까지~

 

소꿉장난 같이 심어 놓은 강낭콩과 배추를 보여주는 도반. 폭풍 칭찬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 거리는 도반을 보자 귀여워서 마음이 간질 거렸다.

: 어쩜 밭도 이렇게 잘 일궜을까!! 오빠 정말 대단하다!

도반 : (으쓱한 표정으로) 모두 돌밭이라서 이 정도 일구기도 많이 힘들었지~

강낭콩 꽃

 

이어서 뿌듯한 표정으로 보여준 건, 계곡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었다. 큰 돌 작은 돌을 일일이 옮겨서 만들었단다.

: ~ 세상에!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일이네.

도반 : 밭을 일구며 나온 돌이랑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돌들로 만들었어. 큰 돌 굴리기가 정말 힘들었지.

 

... 진짜... 극성~ 극성~ 이런 극성이 없다, 정말.

이런 열정이 있으니까 마흔에 수능을 보고 약대에 입학했고, 학비를 벌기 위해 공사판 막노동을 해가며 공부했어도 결국에는 약사가 된 거겠지. 진심 존경스럽다.

 

할 일이 태산이라 하우스 안에서 쉴 틈이 없었다고 한다. 편백나무로 마감해서 향긋하고 아늑한 하우스이건만.

 

하우스 내부도 많이 변했다.

 

나라면 정말 필요한 것만 두고 빈 공간이 주는 여유를 즐겼을 텐데.

 

책을 골라서 옮기느라 평창 전원주택 2층 서재는 폭탄 맞은 거 같이 해 놨다...

평창 전원주택 2층 폭탄 맞은 서재

 

다락으로 올라가서 사진 구도를 잡으며 말했다.

: 오빠 모자가 사진에 잡히네요. (그러니 조금 비켜주세요라는 의미.)

도반 : 모자는 찍혀도 괜찮다~ (자기 얼굴만 안 찍히면 된다는 의미.)

 

나와 도반은 이렇게 많은 부분 엇갈린 채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말한다.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았어. 그렇다고 이 확실한 사실 때문에 내 즐거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내 손에 쥐고 있는 이 오렌지 반쪽이 내 생애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되었거든.’ 

(가사와 영상이 너무도 아름다운 BTS MIKROKOSMOS 경회루 공연 듣기)

 

운명이 내준 어려운 숙제를 대면한 분께 말해주고 싶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그저 주어진 오늘만을 잘 살아내라고.

우리는,

인생의 어려운 숙제에도 불구하고,

오늘 발견한 소소한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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