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편이다.
때문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서 제공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께 재치 있다는 말을 들었고
회사 다닐 때는 분위기 메이커라는 말을 들었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에게서 예민함과 배려를 읽을 수 있었다.
달려라 방탄 퀴즈.
PD : 말레이시아 수도는?
여러 오답 끝에 첫 음 힌트를 들은 RM이 쿠알라룸푸르를 맞혔다.
지민 : 아미 여러분 서운해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진짜~
(애교 가득한 하트 체스처와 표정으로) 사랑합니다~
말레이시아 아미들의 서운할 마음까지 헤아리는 지민.
옛 남친들은 여차저차 헤어진 후에도 연락을 하곤 했다.
그들이 나를 그리워한 이유는,
서른 넘은 친누나를 보니
좋은 결혼 상대 만나는 게 힘들어 보여서(SS, 이니셜),
내가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라서(아도니스, 별명),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서(민재, 가명),
나만큼 좋아지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류, 가명)... 라고 했다.
나는,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처럼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징어처럼 구겨진 얼굴로 소리 죽여 울지언정,
헤어진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결혼 초기.
자기애가 용광로처럼 끓어 넘치는 도반(남편)과
챙강~ 채챙강~ 불꽃 튀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도반 못지않은 자기애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강한 자기애 형성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헤어진 후에도 나를 그리워해 준 이들도 한 몫 했다.
그들 덕분에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수 있었다.
도반 : (결혼 초, 뭔가로 기분이 상해서) 처남 처음 만난 날, 우리 누나 어디가 좋았냐고 물었었지?! 오죽 좋아할 면이 없으면 처남이 그렇게 물었을까!
이 무슨 퐝당한 씨츄에이션이란 말인가~!
상대편 지인에게 첫인사 할 때, 우스개로 묻는 평범한 질문 아니던가.
에라잇~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닌 것이닷!
도반의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도 그런 질문을 받았었다.
친구들 : 우리 00이 어디가 좋아요?
나 : 다 좋지만~ 어른답고 너그러운 인품이 제일 좋아요~!
(에효... 누굴 탓하랴... 사랑에 눈이 멀었던 것을.^^;)
다시 말하지만 나의 예민함은
상대가 원하는 바를 빨리 캐치해서 상대를 기분 좋게 배려하게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자기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였다.
‘입 안의 혀’처럼 굴 수도 있기에
나만큼 좋아지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었겠지, 암~
고리골짝 옛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스스로를 포장하는 서론이 꽤나 길었다.
이제부터 많이 유치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자기방어벽을 쌓아 둔 거다.
이제 본론이다.
예민함이 타인에게 피곤함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도반과 식사하며 나눈 이야기다.
“오빠. 일전에 청량리 스테이크 집에서 12시에 지인들을 만나기로 했었어. 내가 기차 연착으로 5분 늦게 도착했는데, 먼저 도착한 A와 B가 내가 미리 주문 부탁한 시그니처 스테이크를 먹고 있더라. 나라면 기다렸다가 같이 먹었을 텐데. 최소한 내가 부탁한 메뉴는 남겨두고 자기들이 주문한 것만 먹고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땐 사소한 일에 불쾌해 하는 게 속 좁은 거 같아서 내색 안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혹시나 있을 연착까지 고려해서 12시 10분에 만나기로 했지. 이번에는 연착 없이 12시 쯤 도착했는데 지인들은 장소가 맘에 안 든다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더라구.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그냥 옮겼대.
이번엔 내가 기분이 몹시 안 좋다고 표현을 했어. 최소한 약속시간까지는 기다렸다가 같이 이동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착한 A는, 만나기로 한 곳이 너무 캐쥬얼한 분위기라 멀리서 온 나한테 더 좋은 걸 사 주고 싶어서 그랬대.
그 마음은 고마운데 나는 좋은 음식보다 기다려주는 게 더 좋다고 했지.
초딩도 아니도 이런 일로 마음 상하는 게 부끄럽기도 해. 그런데 인간관계는 사소한 것에서 쌓이는 거잖아요.
지인들에게 나는 예민해서 피곤할 텐데 나는 지인들이 무례해서 불쾌하네."
"아이고~ 우리 포동이가 속상했겠구나. 일본에서는 고깃집에서도 자기 앞에 익은 고기만 먹는 게 예의야. 팔을 뻗어 남 앞에 먼저 익은 고기를 먹으면 아주 무례한 거지.
근데 음식 주인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먹고 있다니!
사무라이 시대라면 그 자리에서 칼 맞을 일이야!!"
도반이 나를 토닥이는 경우는 드물어서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칼 맞을 일은 아닌데 적극적으로 나를 위로 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너무 친해져서 니 것 내 것 없이, 적당히 선을 넘으면서 지내는 관계, 나는 별로다.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주는 격식과 예의가 좋다.
이런 대화를 한 다음 날 도반이 쪽지를 주었다.
도반 : 운동 다녀올 테니까 숙제해 놓고 있어~
황둔찐빵과 칙촉 시크릿이 헷갈렸다.
황둔찐빵은 평창 가는 길에 위치해 있고, 칙촉 시크릿은 평창읍 하나로마트에서 도반이 사준 과자이기 때문에 둘다 평창과 관련이 있다. 또 황둔찐빵과 칙촉 시크릿 둘 다 ‘먹는 것이 제일 쉽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먹는 게 쉽지 않기란 쉽지 않다.
도반 왈, 과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매일 두 개씩 먹겠다던 내가 칙촉 시크릿 12개를 이틀 만에 다 먹었으니까 ‘먹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와 연결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하여간 결론을 내리자면~
세상에 예민한 사람들과 둔감한 사람들 딱 두 부류만 있어서
어느 쪽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예민한 사람들과 살겠다.
자신이 남에게 상처 주면서도
상처 주는 줄 모르는 둔감한 사람들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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