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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우체국 앞에서에 얽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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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변두리 빈민가 출신, 1969년생 X세대다.

빈민가라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이 당시는 너나없이 못 살았다.

학창시절 교장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벗어나려면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산업 역군으로......류의 조회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 헌장을 외우기도 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윤도현

 

빈부 차이는, 좋은 물건의 소유 여부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을 가른다. 지지리 공부를 안 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머리 덕에 괜찮은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활을 하며 놀란 것은, 촉촉한 감성 돋는 문화였다.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 연극과 영화와 유명 가수들의 공연, 분위 좋은 카페에서의 미팅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먹기...

 

서울대 법학과 남학생과 미팅했을 때.

남학생 :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어머님의 희생이 컸습니다.

: (괜한 자격지심이 발동해서) 지금의 님이 뭔데요?

혹시 자수성가 사업가? 아님 나라를 지키는 비밀 정보 요원? 하하하~ 

가을 우체국 앞에서 방탄 진

 

남자는 그저 경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며 이십대를 지냈다.

졸업 후 취직을 했는데 공부보다 회사 일이 적성에 맞았다. 전산실에 근무하며 1년 동안 생리휴가는 물론 월차를 단 하루도 안 쓰고 야근에 휴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물아홉의 어느 날.

일만 하다 청춘이 지나가네.’라는 생각에 온라인 영화 동호회에 가입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슬의생

 

거기서 시삽을 맡고 있는 민재(가명)를 보았다.

민재의 해박한 영화 지식에 감탄했다. 일밖에 모르는 나를 안타깝게 여긴 듯 CD와 테이프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안드레아 보첼리, 마이클 런즈 투 럭, 윤도현 밴드...

민재가 경험한 영화와 음악이라는 문화를 나는 경험하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민재에게 어린왕자’를 선물했다.

어린 왕자를 읽은 민재가 말했다.

- 누나! 어린 왕자는 소설이 아니라 시야, ! 어쩜 이렇게 구절구절 아름다울까!

넌 어쩜 그렇게 따뜻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니?”

- 엄마한테서 물려받았겠지... 이 세상에서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누나야... 

 

내가 문과성향으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사람이란 걸, 민재를 통해 알았다. 수학을 제일 좋아해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일중독자로 사느라, 몰랐다. 두 살 연하라는 게 부끄러워서 민재와 연인이 되지는 못했다.

 

- 누나, 윤도현 밴드 알지?

? 잘 모르는데?”

- 와... 윤도현 밴드를 모른다고? 다음에 테이프 선물해 줄게.

 

민재가 선물해 준 테이프에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실려 있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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