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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내 속안엔 몇 십 몇 백 명의 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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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가시나무, 하덕규(시인과 촌장)
‘내 속안엔 몇 십 몇 백 명의 내가 있어
오늘 또 다른 날 맞이해
어차피 전부 다 나이기에 고민보다는 걍 달리네’ - IDOL, BTS

‘내 속에 너무 많은 나’ 중에 어린양하는 ‘내’가 발현되는 건 도반(남편) 앞에서다. 세 명의 연하를 만난 후, no more 연하!!를 외치며 선택한 사람이 도반이었다.

단정한 2:8 머리, 점잖은 말투, 해박하지만 지루한 대화 센스의 도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매력적인 남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S호텔의 반짝이는 조명 아래 선남선녀들이 담소 나누는 시간은 참 즐거웠다. 기분 좋게 홀짝홀짝 와인 잔을 기울이다보니 기분이 마구 좋아져서 맹랑한 내가 튀어나왔다.

다음 날, SNS 쪽지를 보냈다.
[어제는 실례 많았습니다.
교만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네요.
부끄럽지만 그 모습 또한 저라는 걸 잘 압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저는 누구도 판단하지 않기에
아미네님을 교만하고 어리석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아미네님도 스스로 자책하지 말기 바랍니다.
식사는 대접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도 멋졌다!
식사 초대를 거절하던 입장에서 거절당하는 입장인 것도 신선했다.
도반이 정갈한 도포차림에 고아하게 갓을 쓴 선비같은 이미지로 떠올랐다.


도반에게 나의 소소한 하루 일과에 대한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당시 내게 있어 글쓰기란
‘4차 산업혁명과 AI시대의 생존 무기’......라기 보다 고급 연애기술이었다.
글쓰기는 일종의 떡밥인 셈이었다.
글은 생략과 부각을 통해 내게 유리하게 편집할 수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을 통해서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떡밥을 물어버린 불쌍한 도반.
악마의 편집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던 도반은,
정치인부터 주변 사람들,
지나가는 개와 고양이까지 판단했다. 맘마미아!
(물론 나에게만 말했다.)

재미는 없으나 선비같이 점잖아서
한 평생 무난하게 살 거라 생각했는데 감정 기복이 꽤나 심했다.
감성 돋는 사진을 보내기도 하지만 감정 돋친 말을 내뱉기도 한다.
개그맨처럼 나를 빵빵 터지게 하기도 하고
키메라처럼 나를 향해 펑펑 불을 뿜기도 한다.
다행히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하면서 키메라는 아주 가끔 발현된다.
사람이 갑자기 180도 변해도 문제니까 가끔 만나는 도반의 키메라도 그러려니 한다.
도반 안에도 ‘몇 십 몇 백 명'의 도반이 있는 것이다.

엊그제.
상부장 높은 곳의 그릇을 꺼내다가 유리그릇을 놓치고 말았다.
채앵강! 날카롭게 큰 소리가 났는데, 다행히 그릇은 깨지지 않았다.
(스댕인줄. 메이드 인 프랑스, 칭찬해~)
다정한 언어를 배우지 못한 도반이 말했다.
“덜렁대지 좀 말고! 항상 조심성이 있어야지!”

우리 친정 부모님은 같은 상황에서,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안 다쳤으면 됐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도반이나 타인에게 항상 그렇게 한다.
도반은 좋겠다~ 다정한 언어를 습득한 아내를 둬서.

며칠 전.
나 : 나 스마트폰 바꿔야겠어요.
내가 얼리 버드는 아닌데 너무 오래 써서 밧데리가 금방 닳아요.
도반 : 얼리 어댑터겠지.
나 : 우하하하~(뻘쭘해서 아주 크게 웃었다.)
설마 내가 얼리 버드랑 얼리 어댑터를 모르겠어요~?

나이가 드니까 단어들이 생각과 달리 멋대로 튀나온다.
사물의 이미지는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이름이 기억 안날 때도 있다.

비오는 날 빨래 후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으며.
나 : 건조기가 있으니까 날씨에 상관없이 빨래할 수 있어서 좋아요.
살균기능이 있어서 안심도 되고. 적외선으로 살균하나?
도반 : 자외선 살균이겠지.

나 : 우하하하~ 말이 자꾸 헛나오는 걸 보면 나도 나이 들었나봐.
도반 : 그러게. ‘소년이로 학난성’이라.
나 : 그게 무슨 뜻인데요?
도반 :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는 말이야.
나 : (씰 데 없이 잘난 체가 발동해서)
‘소년이로 학문난성’ 아니에요? 그래야 글자 수가 딱 맞는데?
도반 : 허허...이런...
‘소년이로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 칠언절구 아니냐~
시간을 아끼라는 뜻이야.
나 : 오빤 정말 모르는 게 없네~ 최고최고!

도반은 나의 오류를 고쳐주면서 찬사 받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내가 도반의 오류를 처리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지난 6월, 바리스타 시험을 보고 온 나를 위해 현관에 붙여 논 메모.


금의 환양?
금의 환향이겠지~
도반이 몰라서 이래 썼겠나~
이렇게 실수하는 우리 도반이가 귀여워서 틀렸다고 말 안 해줌~ㅎㅎㅎ
가끔 꺼내 보고 혼자서 실실 웃음.

중년임에도 신혼같이 닭살 돋는 이유 중 하나가
도반과 있을 때
내 안의 몇 십 몇 백 명의 나 중에
어리숙하고 무지한 내가 나오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도반이 나를
어리숙하고 무지하게 보는 건, 도반 탓이 아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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