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리브나무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읽다』를 들었습니다. 제 경우 전자책 오디오로 책을 들으면 내용이 건성으로 스치는 거 같습니다. 아직은 종이책의 촉감과 잉크 냄새를 맡으며 읽는 것이 좋네요.
자기계발서나 전문서적을 읽는 목적은 확실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계발하고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서죠. 소설은 왜 읽는 걸까요.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이다. (중략)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과의 투쟁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것은 작가와의 정신적 교류를 경험하고 작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자기만의 경험과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초등학생 6학년 때 이사를 가는 바람에 서신을 주고받던 친구 초이(가명)가 있었습니다. 초이가 고등학생 때 편지에서, 박인환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를 소개하며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가 무슨 뜻인 거 같냐고 묻더군요.
나보다 책을 많이 읽던 초이였기에 다소 자격지심 섞인 호전적인 답장을 했습니다.
‘모든 문학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향유와 해석은 독자의 몫이야. 그래서 같은 문장에 대해서 독자 수만큼의 해석이 있을 수 있지. 두 개의 바위틈은 현실의 고통을 말하는 거 같아. 뱀은 몸 길이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며 바위틈을 지나야할 거야. 몸 길이가 인생의 길이라고 생각하면 ’청춘을 찾은 뱀‘이란 삶을 마친 후 천국을 찾은 인생일 거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지금 생각해보니 소설과 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초이가 있었음이 참 감사하네요.
사람과 이야기의 관계에 대해 천착해서 자기만의 문장으로 벼린 작가의 말을 들어 볼까요.
‘한때 나는 인간이 이야기의 숙주라 생각했다. 이야기가 유전자처럼 인간을 탈것으로 삼아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을 이야기로부터 배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런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인간이 바로 이야기다. (중략)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 다.’
100년도 안 되는 세월을 살고 고작 몸피만큼의 세계를 차지하는 ‘나’라는 인간. ‘나’는 대부분 원주시 00동 이라는 좁은 서식지 내에서 활동합니다. 그러나 책을 펼쳐들면 태초부터 먼 미래까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지구뿐 아니라 우주와 환상을 포함한 거대한 세계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초이가 연인으로부터 책 선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책 내지에 이렇게 써서 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평생 동안 읽고 싶은 책입니다.’
제가 싱글모임에서 만난 어떤 여자분이 말하더군요.
“하도 많은 남자를 만나다보니 다 뻔해요.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나 할까. 기대나 설렘이 아예 없어요.”
그 자리에서는 함께 웃고 말았는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전집으로 나온 책의 표지는 비슷할지 몰라도 내용은 모두 다릅니다. ‘남자’라는 종의 일반적인 행동 양식은 전집의 표지처럼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그’의 생각, 경험, 가치관, 언행, 습관... 모든 것은 독특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만이 가진 유니크한 이야기를 사랑했습니다.
'여행의 이유'에서도 그랬든 '읽다'에서도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소설까지, 미국드라마의 등장인물까지 유려하게 넘나드는 글쓰기 스타일이 좋았습니다. 읽는 행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작가만의 매력적인 방식으로 집필한 ‘읽다’,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김영하 작가가 인용한 신형철 문학 평론가의 글,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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