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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리뷰 스스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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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 소개하는 친구 올리브나무입니다.

김훈님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2015, 문학동네 출간)는 당시에 언론사 선정 올해의 책입니다.

 

김훈 작가는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한 글자 한 글자 몸으로 밀고 나가며 겨우 쓴다.’고 합니다. 그렇게 몸의 기운을 살라 글을 쓰니 발표하는 소설마다 상을 탔나봅니다.

 

표제작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면 라면 하나 끓이는 일이 예술 행위 같습니다. 그리고 라면을 먹는 행위 역시 예사롭지 않지요.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슬프다, 시장기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라면을 끓이며 아들아 사내는 돈을 벌어야한다

 

저자가 남태평양에서 쓴 글입니다.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중략)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하여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향하여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태어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우글거린다.' 

여행이 노동이라니...... 직업병도 중증인 듯하여 안쓰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자연 :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

 

제가 가끔 인용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표현도 김훈님의 글입니다.

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중략)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다시 밥을 벌수가 있다.’

 

저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펑펑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탈영병의 목을 베었던 날의 일기였던 거 같습니다. 문장은 간결했습니다. 기억에 의존해서 문장을 쓰려고 궁싯거리다 결국 검색했네요. 

나는 수군통제사였다. 나는 먹었다. 부황 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고뇌가 절절하게 전달 되서 마음이 아리고 쓰리고... 아팠습니다. 행간에 이처럼 많은 느낌과 울림을 내포한 문단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칼의 노래는 모든 이의 필독서입니다.

 

그리고 본서에 실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글. 죽음으로 돌아온 고등학생 소녀의 소지품에서 나온 물에 젖은 만원 짜리 다섯 장에 대한 글을 들으며 또 울고 말았습니다.

 

라면을 끓이며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들어봅니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작가의 문체는 지문과 같습니다. 한 작가를 좋아해서 섭렵하다보면 누가 쓴지 모르는 문장 한 줄을 읽어도 그 작가의 글임을 알게 됩니다. 김훈 작가는 누구보다 선명한 문체 지문을 가진 분입니다. 저는 김훈 작가의 문체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더군요. 2배속에 익숙해진 저에게 오랫동안 중언부언하며 말하여 질 수 없는 것들을 글로 표현하려는, 그 애면글면 핍진함이 버거웠습니다. 김훈님의 글은 저처럼 2배 속으로 들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자식의 첫 월급으로 용돈을 받은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글로 소개를 마칩니다.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다. 딸아이는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었고 용돈이라며 15만 원을 주었다. 그 아이는 나처럼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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