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익숙해질 때도 한참 지났건만 주방 일은 버겁다. 이웃님들 요리 포스팅을 보면 무척 먹음직스러워서 오늘은 저걸 만들어 먹어야지 결정하는데 막상 끼니가 닥치면 늘 하던 걸 하게 된다. 황태콩나물찜, 된장찌개, 두부조림, 파래무침, 감자조림, 도라지나물,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은달래 간장과 파래김...
어제는 시래기를 삶아서 시래기 된장지짐을 하고 길동시장 낙지마당 낙지볶음으로 저녁 준비를 했다. 유기농 시래기는 껍질을 까지 않고 잘게 썰어 먹는 편인데 어제 시래기는 질겨서 껍질을 벗겨야 했다. 시래기를 지지기 전에 물기 적당히 짠 시래기를 종종 썰어서 된장과 고추장 약간, 다진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서 시래기에 간이 배게하는 것, 평창 전원주택 이웃언니의 비법이다.
건강을 위해 낙지볶음은 기름에 볶지 않고 멸치다시마 육수로 요리한다. 멸치는 기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약불로 볶아 비린내를 날려준다. 멸치다시마 육수에 감자, 고구마, 당근, 양파를 넣어 끓이다가 재료가 거의 익었을 즈음 낙지를 넣고 재빨리 익혀서 질기지 않고 탱글탱글한 식감을 살렸다.
입맛이 까다로운 도반(남편)이 시래기 지짐도 낙지볶음도 정말 맛있다면 먹었다. 드문 일이다. 도반도 나도 음식솜씨 훌륭한 도우미 집사님이 절실하다.
며칠 전 눈이 내리고 날이 흐렸다. 흐린 날이면 예전에 압박골절 됐던 척추부분이 아파서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 오빠. 할머니들이 흐린 날 삭신이 쑤신다고 하는 거처럼 나도 골절됐던 등이 아파요~
- 에효, 우리 행운동이도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운동 열심히 해야 돼. 건강이 최고니까!
도반이 끓여주는 계피생강차(꿀과 여러 약재를 넣는다.)는 언제 마셔도 맛있다. 신기하게도 차를 마시고 30분 정도 뜨끈한 황토 침대에 누워있으면 몸살 기운도 등이 아픈 증상도 말끔해진다. 증상이 심하면 하루에 두 차례 마시기도 한다.
- 오빠, 이 쌍화차 향기는 어떤 한약재야?
- 천궁이지.
- 오빠는 양약, 한약도 잘 알고~ 보일러도 해체해서 고치고~ 황토 오두막도 짓고~ 편백나무 방도 만들고~ 노래도 잘하고...... 천재 아이가?! 우리 오빠 천재만재!
- (광대승천, 입꼬리 실룩) 남들도 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 뿐이야.
- 히야~ 겸손하기 까지!
도반을 위해 매일 감자, 당근, 사과를 쥬서기로 갈아준다. 재료들의 껍질을 아주 살짝만 벗기고 썰어서 착즙 후 쥬서기를 분해해서 설거지하기까지 삼십분 남짓 걸린다. 그래서 한 방울의 쥬스도 소중하다.
- 오빠, 밑에 가라앉은 감자 전분도 다 먹어야지. 쥬스 마시기 전에 흔들어요~
- ...... 전분은 맛이 없어서 그래.
- (웃음이 터졌다. 초등학생이가?) 천연 치료제라고 생각하고 먹어야죠~ 아까워서 내가 물에 흥겨 먹잖아.
- 행운동이가 먹으면 됐지~
몸에 좋은 감자 전분은 맛이 없어서 안 먹으면서 몸에 안 좋은 과자는 또 열심히 사 왔다. 나를 위한 간식이라고 하지만 거의 도반이 다 먹는다. 내가 식탐이 있어도 55사이즈를 유지하는 건 간식을 잘 안 먹기 때문인 거 같다.
- 행운동아. 이제 건강을 위해서 과자는 그만 먹어라.
- (??) 오빠! 과자는 오빠가 거의 다 먹었잖아?
- 누가 먹었든(?!) 이제 과자는 끝이야.
과자를 끊은 도반이 강냉이를 사왔다. 1.5Kg의 엄청 난 양에 7500원이라고 한다.
- 행운동아. 강냉이는 국산에다가 화학 첨가물이 덜 들었으니까 강냉이를 간식으로 먹어라.
- 오빠~ 나 간식 잘 안 먹는 거 알면서~ 그리고 강냉이 별로 안 좋아해요. 이렇게 많으면 한 달도 더 먹겠네.
강냉이는 일주일만에 동이 났고 두 번 더 리필해서 총 4.5kg을 먹었다. 강냉이가 먹을수록 구수하고 담백한 것이 참 매력적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많이 먹어도 포만감이 안 생겨서 자꾸 먹게 된다. 나, 강냉이 좋아하네~ 도반은 3kg 짜리를 사왔다.
도반 덕분에 강냉이 맛을 알게 되었다. 순대국도 도반과 처음 먹어본 후 맛을 알게 되었다. 장어구이, 갈치속젓도 도반 덕에 맛을 알게 된 것들이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좋아하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 함께 살아서 좋은 점들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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