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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당신의 컨텐츠/도서리뷰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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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 소개하는 친구 올리브나무입니다.’라고 시작하면 자기검열이 많아진다. 공개 포스팅 자체가 불특정 다수가 본다는 걸 전제하지만 ‘~습니다.’보다는 ‘~체로 쓸 때 자기검열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저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는 진솔하게 말하고 싶은 책이다. 203040세대보다는 50대 이후에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일 것이다.

저자의 문체는 알랭 드 보통을 연상시킨다. 소 냉소적이고 많이 재치 있으면서 저자의 지적 사유를 마음껏 펼쳐서 읽는 이의 정신세계도 고양시키는, 뭐 그런 거. 프랑스 작가들의 특징인 건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표지

 

책 전반이 다음과 같은 사유와 문체로 이루어졌다. 뼈 때리는 통찰이 아닌가.

‘결국, 까놓고 보면 사기다. 과학 기술이 늘려 준 것은 수명이 아니라 노년이다. 죽기 직전까지 우리를 쌩쌩한 30대, 40대의 외모와 건강 상태로 살게 해준다면, 혹은 우리가 선택한 연령대로 살아가게 해준다면, 그게 진짜 기적일 것이다. (중략)

이 안식년은 독이 든 선물이다. 오래 사는 만큼 병도 오래 앓는다. (중략) 의학은 장애와 치매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되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삶을 20년이나 더 살라니! (중략) 노년은 신체와 정신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조건에서만 참을 만하다.

따라서 생이 길어지고 '진짜 노년'이 늦어질수록 노화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커진다. 이 공포는 점점 더 빨라져서 청소년기부터 시작된다. 20 세밖에 안 된 여성들이 난자를 냉동시키고 성형 수술에 입문한다.’

 

T.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의 무녀가 생각난다. 무녀는 한 웅큼 먼지의 햇수만큼 살기를 구했고 소원을 이뤘으나 젊음을 구하지 않았기에 몸이 쪼그라든다. 조롱 속에 갇힐 만큼 작아진 무녀는 죽기만을 기다린다. 그녀에게 죽은 거 같은 나무에서 라일락을 피어내는 봄’, 자기 몸만 빼고 온 우주가 생동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봄은 잔인한 것이다.

가만!!

작년까지 무녀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은 저기까지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무녀의 늙지 않는 마음이 헤아려졌다! 수백 년을 살았을 무녀가, 조롱 속에 갇혀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 무녀가, 봄에 무뎌지지 않고, 자신의 육체 상태와 상관없이 봄의 에너지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무녀의 시들지 않는 감수성에 감탄이 나오네!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을 넘게 살고도 봄의 에너지를 느끼는 무녀도 있는데 겨우 오십 년도 안 살고 봄에 무뎌지는 사람도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설레는 나는, 하필이면 주일인 어제, 씩씩하게 내돈내산 프리지어를 사려고 화원 두 군데를 들렀다. 가끔 가던 곳은 문을 닫았고 새로 찾아 간 곳은 생화를 다루지 않는 곳이었다. 평일에 다시 가보리라.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 사기라도 높여야 한다. 오늘날의 50대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생아와 상황이 비슷하다. 300여 년 전에는 유럽인의 평균 수명이 30세 남짓이었으니 둘 다 앞으로 30년은 남아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3년 전쯤, 내가 블로그를 한다, 주식 공부를 한다, 책을 쓴다고 하니까 친구 중 한 명이 우리 나이는 뭔가 새로 시작하기보다 잘 마무리 할 때라고 말했다. 앞으로 최소 30년 최대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이미 폭삭 늙어버린 말을 해서 실망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님의 견해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생아와 같은데 말이다.

  

‘우리는 두 가지 지혜 사이에서 갈등한다. 유감스러워도 불가피한 것에 동의하는 지혜. 가능한 것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지혜. 우리는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후로 알게 된 바, 무의식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 속을 지나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생년월일을 지정해주는 것은 행정서류다. 나이는 생물학적 현실에 기댄 사회적 관습이다. 관습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물론, 결국 우리는 쓰러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패배를 내면화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피터 팬처럼 어른이 되기 싫은 어린이, 늙기 싫은 늙은이다. (중략) 나이를 먹는다고 철이 들지는 않는다. 늦바람이 죽을 때까지 갈 수도 있다. 중년 이후의 주책맞은 애정행각이 우습거나 추접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서히 무덤이나 소독약 냄새 나는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관습에 도전하는 것보다 짜릿한 게 있을까?’

 

40대에 알고 지내던 동네 지인 K가 있었다. 스물 셋에 결혼한 K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녀에게 강한 체벌도 불사한 훈육을 했는데 자녀가 중학생이 되자 왕따 가해자가 되었다. 집안에서 눌린 분노가 밖에서 타인을 괴롭히는 폭력 성향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행히 K는 강한 도덕적 기준이 있었기에 피해자와 그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자녀에게도 사과시켰으며 다행히 자녀도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40대의 K : 저는 애 아빠랑 이혼하거나 사별하게 되면 그냥 아이들 키우며 평생 혼자 살 거예요.

 

당시, K가 혼자 살려고 결심하지 않아도 K는 혼자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돌싱, 산적을 연상시키는 체형, 남성스러운 어투, 눈치 없는 언행... K를 이렇게 평가하는 나는, 인간이 덜 되었다. 안다. 인간이 되려고 날마다 애쓴다. 쉽지 않다.

 

: 저는요.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도 혼자라면 남자를 만날 거예요. 혼자만의 시간도 충만하지만 둘이 함께하는 따스함도 소중하거든요

 

내가 교만했다. 지금도 함께 사는 게 힘든데 일흔이나 여든이 되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살아보니 내게 묵은지같은 관계는 많이 버겁다. 묵은지가 되어가는 과정이 도 닦는 과정이겠지만 겉절이 같은 관계도 좋을 거 같다. 서로 소통이 잘 된다든가 서로 발전시키는 관계의 사람과 살았으면 내 생각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은 주구장창 함께 살기보다는 가끔 만나 서로 예의를 지키며 즐겁게 데이트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방점에서 살짝 어긋난, 내 의견일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백발의 왕관을 쓴 사랑이 더 많아지기를.’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생각하는 분, 재치있고 수준 있는 대화에 목마른 분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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