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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에 월백하고 해석 다정도 병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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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야

잠 못들어 하노라

------------------ 이조년(고려 후기의 학자, 문신)

 

이화에 월백하고 해석

배나무 꽃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깊은 밤하늘에는 은하수 가득한데

배나무 가지에 어린 봄기운을

소쩍새가 알겠는가마는

다정도 병인 것인지

잠 못들어 하노라.

 

 '깊은 밤하늘에는 은하수 가득한데'는 내 마음대로 의역한 것이다.

 '은하수가 (그 위치로) 자정을 알리는데'가 원문에 충실한 해석으로 보인다.

삼경은 밤 11시 ~ 새벽 1시다.

 

젊을 때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같은 시각적 표현에 매료됐었다.

나이가 드니 '일지춘심'의 뜻을 깊이 느끼게 된다.

'배나무 가지 하나에 어린 봄 기운'은,

언어가 가 닿을 수 없지만 누구나 경험한 기운일 것이다. 

살갗에서 부드러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느낌.

배꽃은 아닌 꽃

 

아주 오래 전, ‘배나무 꽃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라는 이미지를 차용해서 꽁트를 쓴 적이 있다. 꽁트 속 주인공은 모두가 잠든 밤,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박꽃을 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쏴아~ 바람을 느낀다. 이후로도 종종 마음 속 바람이 불었고 그럴 때마다 주인공은 들로 산으로 쏘다니곤 한다.

 

꽁트 속 주인공처럼 나 역시 산으로 들로 떠돌 때가 있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들어하면서. 꽁트는 꽤 큰 상금을 안겨주었다......

 

 

여기까지 썼다가 내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화에 월백하고는 고등학생 때부터 하냥() 좋아하던 시조였지만 한 밤의 박꽃이미지는 아도니스가 해 준 말이었다. 축대 아래로 낭창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채 흐드러진 개나리꽃을 보고 황금폭포라고 말했던 사람.

 

산책길, 흐드러진 벚꽃을 보자 이곳 아닌 다른 어딘가를 휘적휘적 떠돌고 싶은 마음이 슬쩍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파랑새는 가까이 있다지만,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맨 경험이 없다면 곁에 있는 파랑새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

 

화단 한 켠 척박한 곳에서 자란 파

 

작년 파 값이 금값이었을 때, 평창 전원주택 이웃언니가 파를 주며 화단에 심어 놓고 잘라 먹으라고 했다. 계속 자란다고. 언니 말대로 몇 번 잘라먹고 잊고 있었는데, 뿌리로 삼동을 견딘 파가 싱싱한 초록 잎을 힘차게 뻗어 올렸다. 파의 생명력 앞에서 나의 게으름을 톺아보게 된다.

 

마당에 민들레 몇 송이가 피었다. 며칠 전, 장봐 온 식재료를 정리하다가 매일 점심으로 먹는 샐러드용 녹색 채소를 깜박 잊은 걸 알게 되었다. 나만을 위한 식사라면 한 끼 샐러드는 건너 뛸 수 있지만...

급한 대로 마당에서 민들레 잎을 뜯어 씻고 냉장고에 있던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고 식이유황 풍부한 양파와 색이 고운 노랑 빨강 파프리카를 썰고 올리브오일 잔뜩 뿌린 샐러드를 만들었다.

도반은 과일과 구운 마늘을 먼저 먹은 후 샐러드(채소) -> 단호박팥죽(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한다. 나는 구운 마늘, 바나나, 사과, 오렌지 등을 샐러드에 넣어 먹는다.

 

 

3주 전 쯤, 쌀쌀한 날씨에 할머니가 노상에서 호박 가지 등 찬거리를 팔고 계셨다. 직접 캐셨다는 민들레와 냉이를 삼천 원 어치씩 샀다. 민들레와 냉이는 땅에 붙어 자라는 것들이라 흙투성이이기 마련인데 정갈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민들레는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뺀 후 고추장 간장 매실액 식초를 넣어 생으로 무쳐먹었다. 쌉싸레한 맛이 일품이었다. 냉이는 여러 번 헹궈서 살짝 데친 후 고추장, 된장, , 마늘을 넣어 무쳐 먹었다. 도반이 좋아라했다.

 

 

종종 버거킹에 간다. 늘 앉는 자리는 대로를 내다보는 자리다. 통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자리. 엊그제는 늘 앉던 자리 대신 목련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목련을 바라보면서 치즈스틱을 천천히 오물오물 먹었다. 콰트로치즈와퍼를 한 입 베어 물고 불맛을 음미했다. 첫 한 입이 가장 맛있다. 치즈와 와퍼와 목련과 햇살만으로도 즐거웠다.

 

 

버거킹에서 나와 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무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저 안에서 나는 즐거웠는데.

타인과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무표정해 보이는 타인이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안에서 많은 감정을 겪어내고 있으리라. 타인의 감정에 적당히 민감한 사람이 좋다. 민감함이 뾰족함이 아닌 배려로 드러나는 사람이 좋다. '다정도 병인 양'했던,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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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공감누르기는 더 잘 쓰라는 격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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