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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목걸이 보면서 내 생각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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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전자책으로 듣고 있다. 단편소설 고요한 사건폭설을 듣다가 나의 유년이 생각났다.

 

나의 어머니는 아동기에 6.25 전쟁을 겪으셨다. 마을 사람들은 한치 앞을 기약할 수 없는 난리 통이라 집집이 돌아가며 소를 잡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날마다 잔치 같았다고 회상하셨다. 워낙에 외진 시골이라 전쟁의 피해는 크지 않았고 전쟁을 피해 찾아든 피란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줄 만큼 인정 있는 곳이었다고.

 

전교 1등에 부족함 없이 살던 어머니

 

크게 부유하지는 않아도 때마다 고기 반찬에 부족함 없이 자란 어머니는 스물 셋에 서울로 시집오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셨다. 인쇄공인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오남매를 먹이고 공부시킬 수 없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았던 어머니는, 밀가루 반 포대를 받기 위해 새마을 사업에 동원되어 송충이를 잡기도 하셨다. 일당이 높은 일을 찾아 공사장에서 일하기도 하셨다. 공사장에서 모래 짐을 진 채 단내 나는 숨을 몰아쉬며 구멍 숭숭 뚫린 아시바(비계, 발판)를 오르내리셨다.

뼈가 부서져라 일해도 너희가 바르게 크는 모습을 보면 힘이 솟곤 했어.”

 

내가 여덟 살 때, 어머니는 노점을 시작하셨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버스 종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신문과 잡지, 과자, 껌 등을 늘어놓고 파셨다. 어머니는 동생과 나에게 노점에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을 건너는 게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몰래 엄마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멀찍이서 엄마가 손님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어 주는 모습을 지켜봤다. 손님한테 굽신 인사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서러움이 복받쳐 왈칵 눈물이 났다. 어머니의 고생과 우리의 가난을 피상적인 단어가 아닌 살갗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화인처럼 뇌리에 선명하게 찍힌 기억이다.

 

나는 유년기와 아동기에는 조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서른 넘어서는 철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았다.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내 안에 억눌린 어린이 자아를,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해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한 유치한 아이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정신 건강을 지킨 것이 아닌가 한다.

 

어머니는 김 약국, 미성 전파사, 진주 중국집 등 주변 상인들과 잘 지내셨다. 잔돈이 많이 필요한 김 약국을 위해 미리 잔돈을 준비해뒀다가 은행가는 수고를 덜어 주었고 미성 전파사 주인에게 잡지를 무료로 빌려 주었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노점이 있는 느타나무 아래로 모여 담소를 나누곤 했다. 어머니는 자서전에 돌개바람이 불던 날을 기록하셨다. 바람에 신문이 날아가자 김 약사와 전파사 사장, 중국집 사장이 약속이나 한 듯 뛰쳐나와 날아가는 신문을 주워다 준 일에 대해. 인정 넘치는 고마운 사람들에 대해.

 

어머니의 자서전, 큰 학자가 될 사주

 

하루는 점보는 사람이 어머니의 노점 옆에서 점보는 일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흔쾌히 그러라고 대답했고 점보는 이가 고맙다며 어머니의 사주를 공짜로 봐주었단다.

공부를 계속 했으면 큰 학자가 되었을 텐데, 그 팔자를 때우느라 신문을 팔고 있는 거야.”

 

나는 간단한 수셈이 원활해진 국민학교 3학년부터 잠깐씩 노점을 봐 주게 되었다. 어느 여름 날, 느티나무 위에서 새끼 새가 툭! 떨어져서 죽었다.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새끼 새였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콩닥거리는데 지나가던 여자 어른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아주 못됐구나!! 왜 새를 바닥에 패대기쳐서 죽이는 거야? ? 그런 못된 심보는 어디서 배웠어??”

나는 모멸감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스스로를 변호할 줄 몰라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여자는 쯧쯧쯧 혀를 크게 차더니 가버렸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말발을 갖추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부터였다. 겨우 이름 석 자 쓸 줄 알고 입학했는데 반에서 1등을 하기 시작한 때였다. 중학생 때, 독하게 반항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진 나를 보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순둥이였던 아이가 어쩌다 ㅈㄹ배기가 되었을까......”

 

나는 순둥이였던 게 아니라 부당한 환경이나 대우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전산실 근무시절, 나를 예뻐해 주시던 전산실 실장님이 말씀하셨다.미스 강. 지가 잘못하고 큰소리 치는 눔 있으면 갈아 마셔 부러!”

 

스물일곱 살에 경력직으로 회사를 옮겼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린 직원이 텃세를 부렸다. 일 중독자에다 무엇이나 빨리 익히는 나는 석 달 정도 지나자 그녀보다 일을 더 잘하게 되었다. 때가 되었으므로 그녀를 탕비실로 불렀다. “000, 서로 잘 지낼 수 있는데 왜 피곤하게 굴어? 계속 까불면 갈아 마셔 버린다! 독한 말을 했지만 그녀를 물심으로 챙겼다. 임신하고도 유니폼을 입는 그녀를 위해 산모 복장을 하게 해 달라고 건의해서 관철되었다. 90년대는 불문율로 결혼이나 임신이 퇴사 사유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녀는 사석에서 언니~ 언니~ 하면서 나를 잘 따르게 되었다.

 

어머니의 자서전, 만족을 알자

 

우리 노점에서는 껌을 낱개로도 팔았다. 쥬시 후레시, 후레시 민트 같은 껌의 당시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통에 7개가 들었고 50원이라면 낱개 1개의 값은 10원이었다. 어느 날, 여자 어른이 껌 한통 가격과 낱개 가격을 물었다. 그러더니 새 껌을 하나 뜯어서 낱개 세 개를 빼서 내게 주면서 20원을 냈다. 열 살의 나는, 그렇게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왜 안 팔아? 껌 한 통에 50, 낱개는 10원이라며? 50원에서 낱개 3개 값 30원 빼면 20원 맞잖아. 안 그래?”

껌 한 통이 아닌 낱개를 살 수 있는 편의에 대한 이윤을 붙인 것이다. 그 이윤은 사는 사람이 아닌 파는 사람이 차지할 몫이다.’라고 말할 논리가 열 살의 내게는 없어서 총총히 제 갈 길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력감, 억울함, 분노를 느꼈다.

여자 어른이 어린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취한 이득은 고작 낱개 껌 두 개였다

 

내가 4학년이 됐을 때, 어머니의 노점 옆에 냉차 노점이 생겼다. 냉차 파는 아주머니는 어머니께 곁자리를 내주어 고맙다며 냉차를 마음껏 드시라고 했다. 냉차 아주머니의 짧은 파마 머리는 빛바랜 갈색으로 부스스 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낡아서 얇아져 있었다. 아주머니의 검게 그을린 얼굴, 두꺼운 입술, 지친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주머니는 점심으로 라면을 2봉씩 삶아 드셨다. 코앞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등 뒤쪽으로는 차들이 달리는 길거리에서 석유곤로를 켜고 양은 냄비에 라면을 삶았다. 라면이 다 익었는데 젓가락으로 휘젓고 계시길래, “불겠어요. 어서 드세요.” 했더니 일부러 불리는 겨어. 많아지라구우하셨다. 김치도 없이 라면을 드시고 냉차로 입가심을 하셨다.

 

냉차 아주머니에게는 아주머니와 많이 닮은 딸, 은정 언니가 있었다. 나보다 네댓 살 많은 은정 언니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가 아닌 액세서리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언니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며 말하는 언니의 옆얼굴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데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기억에 담아 둘만큼 의미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른스러운 이야기였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은정 언니는 자신이 공장에서 만든 거라며 금빛 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가족이 멀리 이사 가기 때문에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목걸이 보면서 내 생각 혀~” 목걸이를 받아 들고 고맙다고 했지만, 마음이 아릿해져서 울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이별도 슬펐고 공부대신 악세사리를 만들어야 하는 어린 여공의 나날들이 슬펐다. 언니가 준 목걸이는 잘 때도 하고 잤는데 얼마 후 매끼(도금)가 벗겨지고 검게 변해서 더는 하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 들어 본다. 내 기억 아주 깊은 곳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는 힘이, 그녀의 소설에는 있구나. 은정 언니에 대한 맑은 그리움이 퐁퐁 솟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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