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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명대사 해석 결말 감상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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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영화 볼 결심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두 시간 넘게 집중하는 게 버겁기 때문에. 주말에는 하루에 세 편씩 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는데. 헤어질 결심은 언젠가 봐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N차 관람을 하는 사람, 대본집 구매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있다.

 

얼마 전, 정훈희님과 송창식님이 부른 안개를 들었다. 송창식님의 음색을 듣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 퇴적돼서 잊고 있던 그리움이 솟구쳤다. 가슴을 후벼 파는 감상에 살짝 몸을 떨었다. 박찬욱 감독이 성대 컨디션 때문에 한사코 고사하는 송창식님을 설득하고 설득해서 녹음한 이유를 단번에 납득했다.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 보게 된 헤어질 결심 명대사 해석 결말 포스팅이다. 스포일러 치사량이니 스포일 당하기 싫은 분은 패스.

 

 

헤어질 결심 명대사 해석 구구절절이 명대사

출입국 사무소 면접관 기도수(60년 생)가 암벽 정상에서 추락해 사망한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 장해준은 기도수가 소지품마다 영문 이니셜을 새긴 걸 보고 소유욕이 강하다고 스마트워치로 녹음한다. 젊고 아름다운 부인 송서래(중국 교포)는 남편의 죽음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다.

송서래 :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봐.

서래는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해준은 수사과정에서 그녀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걸 알게 된다. 뼈가 골절됐던 부위도 여러 곳이며 몸에는 기도수의 이니셜 문신이 있다. 골절된 부위를 보여주는 엑스레이 사진보다 기도수의 이니셜이 새겨진 문신 사진이 더 끔찍했다. 사람을 소유물로 보는 사람이라니.

 

 

해준은 서래가 예뻐서, 가정 폭력 피해자라서, 산에 오르는 걸 무서워해서... 그녀를 의심할 수 없다. 후배 경찰이 남편이 죽었는데 너무 덤덤하다고 하자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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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은 잠복하며 망원경으로 서래를 관찰한다. 저녁을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서래, 남은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도록 그냥 놔두는 서래, 식후 담배를 피우는 서래... 서래가 청승맞은 자세로 팔에 머리를 묻은 채 오래도록 앉아 있자,

해준 : 우는구나, 마침내.

해준이 마침내라는 서래의 말을 따라함으로써 마침내 서래를 향한 숨길 수 없는 연정을 드러낸다.

 

 

서래는 요양보호사로 노인들을 돌본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출근했냐고 묻자,

서래 : 죽은 남편이 산 노인을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서래가 헤쳐 온 삶이 얼마나 모질고 생명력 강한 것인지 단번에 알려주는 대사였다.

 

서래는 길고양이에게 사료와 물을 제공하는 캣맘이다. 길고양이는 까마귀를 사냥해 놓는다. 서래는 까마귀를 묻어주고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중국어로 말한다. 해준은 몰래 숨어서 서래의 말을 녹음한 후 번역기를 돌린다.

또 까마귀야? 내가 너한테 밥 준다고? 그럼 됐어. 나한테 선물을 꼭 하고 싶다면 나에게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의 복선이 된다. 고양이는 서래의 친절함에 보답하려고 까마귀를 죽이고 서래는 해준을 지켜주려고 살인을 저지른다.

 

 

기도수가 자살을 암시하는 문서를 동료에게 보낸 것이 밝혀지며 서래는 무혐의로 풀려난다. 해준과 서래는 형사와 피의자가 아닌 남자와 여자로 소소한 데이트를 즐긴다. 해준은 서래가 자신과 같은 부류라고 말한다. 서래는 해준의 불면증을 없애주려 노력한다. 해준은 서래에게 범인 홍산오에 대해 말한다. 홍산오는 결혼한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옛 애인이 가정 폭력에 시달리자 남편을 살해해서 수배 중이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만나는 건 중단한다. 행동은, 자제할 수 있기 때문에. 해서 드라마 슈룹의 초월이가 말한다. “인연을 끊으라면 끊겠지만 마음만은 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준 것도 마음을 키운 것도 저입니다.”... 거센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드는 정념을 거스르는 것은, 유황불의 고통이다.

 

헤어질 결심 홍산오

 

마침내 홍산오가 해준에게 체포되기 일보직전.

홍산오 : (미용실 가위로 자신의 목을 겨냥한 채) 가인이한테... 나 너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 주세요.

내가 꼽는 헤어질 결심 최고의 명대사다. 노트르담의 꼽추에게 에스메랄다가 없었다면 얼마나 공허한 인생일까. 나에게 그가 없었다면...

 

헤어질 결심에는 품위 있고 중의적이고 문학적인 명대사가 많은데 계몽 소설처럼 직설적인 홍산오의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든 이유는 뭘까. 영화 브로커에서 감독의 메시지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낸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대사에 아주 크게 실망했는데 홍산오의 대사는 왜 감동을 주는 걸까. 내 안에 변덕과 모순이 많아서기도 하고 직설적인 표현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어서기도 할 것이다. 미세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섬세한 사람이, 좋다.

 

 

해준은 여러 가지 정황을 확인 후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한 걸 알게 된다. 일전에 서래는 해준이 품위가 있어서 좋다고 했었다.

장해준 :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이때 서래의 입가에 아주 잠깐 미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중략) 저 폰(살인 증거가 있는)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이 나간 후 서래는 붕괴의 뜻을 사전에 찾는다.

붕괴: 무너지고 깨어짐

 

해준은 부산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가 살고 있는 안개 많은 이포(가상의 도시)로 간다. 13개월 후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이 죽고 서래는 다시 해준에게 조사받게 된다. 두 번째 남편은 겉으로 번듯한 투자자 행사를 하지만 사기꾼이었다.

 

해준 : 아니, 왜 그런 남자랑 결혼했습니까?

서래 :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헤어질 결심결심일 뿐, 새로운 사람과 결혼해도 끝끝내 헤어질 수 없는, 헤어져지지 않는 서래의 마음을, 어쩌면 좋으니...

 

해준은 서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서래의 전력을 읊어준다.

해준 : 나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그거 참 공교롭네. 송서래 씨는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서래 : ... 불쌍한 여자네...

해준의 공격성을 무장해제 시키는 말이다. 자기연민은 못난 짓이라지만 사랑 받고 싶은 상대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전략이다.

 

 

서래 : 산책하고 왔더니 피 냄새가 지독해서 당신생각났어요. 당신이 와서 이걸 볼 텐데. 당신이 무서워할 텐데...

서래는 해준을 위해 둘째 남편의 피비린내 나는 살해 현장을 힘들게 청소한다. 얼마나 사랑하면 그럴 수 있을까.

 

해준은 안구 건조증으로 수시로 인공누액을 점안한다. 제대로 봐야하는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포라는 공간은 안개가 많아 시야를 가린다. 해준은 서래가 첫 남편을 살해했을 때 여자에 미쳐서증거를 보지 못한다. 서래의 둘째 남편이 죽었을 때는 의심에 눈이 멀어 진범의 자백을 받고도 서래가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해준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눈이 멀 때가 있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이 연상되는 장면

 

서래 : 당신 목소리요. 반복해서 들었어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해준 :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서래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린다. 그리도 이내 안타깝고 크게 낙심한 듯 표정이 구겨진다.

 

서래가 반복해서 들은 해준의 음성은...

내가 품위 있댔죠? (...) 자부심이에요. ...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여자 때문에 완전히 붕괴된 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 사랑이란 말인가.

 

서래 :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헤어질 결심의 명대사 중 가장 유명한 대사일 거다. 해준은 자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서래 뿐 아니라 내가 듣기에도 명백한) 사랑 고백 후 서래를 떠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사랑을 끝냈다. 그러나 서래는 자기 때문에 붕괴됐다는 해준의 고백을 듣고 진정으로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헤어질 결심 결말 무너지고 깨어질 정도로 사랑해 본 자의 감상평

서래 :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 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서래는, 해준을 통해 평생 처음, 진정한 사랑을 느꼈나 보다. 미결 사건에 집착하는 해준이기에 그의 미결 사건이 되어 평생 그의 마음에 남고 싶었나 보다. 서래는 썰물이 들어오는 만조 시간에 맞춰 바닷가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들어가 앉는다. 소주를 병나발 불며 만조가 되기를 기다린다. 파도가 점점 깊이 밀려와 구덩이에 물을 채우고 퍼낸 모래를 구덩이에 밀어 넣는다. 해준이 바닷가에 왔을 때 서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다. 해준은 서래가 자신이 서 있는 곳 바로 밑에 묻힌 줄도 모르고 안개 낀 바닷가에서 서래를 애타게 부른다. 그렇게 헤어질 결심 결말이 난다.

 

헤어질 결심은 줄거리로 보는 영화는 아닌데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가 많다. 대본집 사는 사람들이 이해간다. 박해일 배우, 탕웨이 배우의 표정과 눈빛 연기, 둘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가 압권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곳곳에 배치한 암시와 반전, 사건과 스토리의 치밀한 설계, 뛰어난 미장센이 무척 존경스럽다. 칸 영화제 감독상, 청룡 영화제 감독상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N차 관람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가 N차 관람한 영화는 오아시스, 8월의 크리스마스, 인생은 아름다워, 화양연화, 러브 액츄얼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일본판)......

 

N차 관람할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안다. N차 관람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보고 두 번째는 해준의 시점에서 세 번째는 서래의 시점에서 본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계속 보게 된다고.

 

헤어질 결심은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요소가 무척 많다. 범죄에 초점을 맞출 때와 불륜이나 사랑에 초점을 맞출 때 해석이 다르다. 마치 서래가 입은 원피스의 색깔이 보는 사람에 따라 초록으로 보였다가 파랑으로 보였다가 하는 거처럼.

 

 

해준 : 지난 402일 동안 당신을당신이그렇다고 해서, 난 경찰이고 당신이 피의자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에요. 피의자, 알죠? 경찰한테 의심받는 사람.

서래들 떠난 후 하루하루를 헤아릴 정도로 서래가 그리웠던 해준. “당신을... 당신이...” 해준이 삼킨 말이 무엇인지 관객은 안다. 발화되지 않은 말이, 이렇게나 품격 있구나...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나에게 감정을 발화하지 않는 품격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인생의 한 시기에, 사랑 때문에, 붕괴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서래처럼 떠난 사랑을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진정한 새 출발이 내 인생에 이롭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성적으로 알았다는 거다, 이성적으로. 마음은, 그놈의 마음은, 이성으로 어쩌하지 못하는 놈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선택과 결정을 할 때 감정이나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이성은 감정적 선택을 한 후 합리화할 명분을 만들 때 사용한다고. ‘역행자의 저자 자청은 불합리한 본능을 거스르고 합리적 선택을 많이 할수록 성공으로 향한다고 말한다.

 

이성적인 척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는, 무너지고 깨어진 채 몇 년 간 방황했다. 그랬기에 안개를 부르는 송창식님의 음색을 듣는 순간, 마음 깊숙한 곳에 퇴적돼서 잊고 있던 그리움이 솟구쳤고 가슴을 후벼 파는 감상에 몸을 떨었던 것이다.

 

 

대학 축제에서 만난 S, 송창식의 음색으로 소환된 그리움의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장 순수하고 열렬하게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은 S였던 거 같다. 어려서 어리석었던 나는,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몰랐다. 연인이 되고 싶어 하는 S에게 남사친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고 딱 잘랐다.

S : ...... 헤어지지는 말고 그냥 친구로 지내자.

학교 정문 앞에서 무작정 나를 기다리던 S. 헤어지고 1년 만에, 다시 3년 만에 연락해 온 S. S는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니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다.

 S와 송창식 라이브 공연에 갔었다. 어쩌면 저렇게 힘든 기색 없이 술술 노래할까, 득음의 경지에 다다랐구나, 생각했다. 정훈희 송창식의 안개를 많이 많이 미안하고 고마운 S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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