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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결말 해석 출연진 감상평 예술인가 외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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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6월에 개봉되어 국내외 수상을 휩쓴 작품입니다.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가 각색을 맡았습니다. 아가씨원작은 영국 소설가 세라 워터스의 작품 핑거스미스로 영국에서 2005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영화 아가씨 결말 해석 출연진에 대해 알아봅니다.

 

영화 아가씨 출연진

영화 아가씨 출연진

 

김민희(히데코 역)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은 일본 귀족 아가씨입니다.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이 되고 싶은 이모부 코우즈키에게 정서적, 성적 학대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코우즈키의 부인이자 히데코의 이모가 자살하자 코우즈키가 주최하는 낭독회에서 이모를 이어 낭독하는 일을 합니다. 코우즈키는 히데코와 결혼하려는 속셈이 있습니다.

 

김태리(남숙희 역)

소매치기인 숙희는 도둑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여자의 딸입니다. 엄마가 죽고 장물아비 손에서 자라며 엄마 못지않은 도둑이 되고 싶어합니다. 히데코 아가씨의 돈을 노리는 백작과 짜고 히데코의 하녀로 들어가 히데코가 백작과 결혼하도록 부추기려 합니다. 결혼 성사 후 백작이 유산을 가로채면 아가씨의 옷과 폐물, 돈을 받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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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후지와라 백작 역)

조선인 고판돌로 일본에서 후지와라 백작 행세를 합니다. 일본에서 히데코의 소문을 듣고 히데코의 유산을 가로채고자 3년 동안 준비해서 코우즈키에게 접근합니다. 일본에서 배운 그림 실력으로 코우즈키의 고서들을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히데코에게 그림을 가르쳐준다는 명분으로 가까이합니다.

 

 

조진웅(코우즈키)

조선인이지만 일본과 영국 문화를 추종하며 일본식 건물과 영국식 건물을 짓고 삽니다. 고문서 낭독회라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거 같았지만 춘화가 그려진 도색소설 낭독회였습니다. 일본인 부인에게 남성들 앞에서 성애 장면을 실감나게 구연하게 하는 등 몹쓸 짓을 합니다. 부인이 자살하자 어린 조카인 히데코에게 그 일을 시키는 변태 정신병자입니다.

 

김해숙(사사키 부인 역)

사사키 부인은 코우즈키 집안 살림을 맡아하는 집사이며 코우즈키의 한국인 아내입니다. 코우즈키가 히데코와 이모를 정서적 성적으로 학대하고 억압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영화 아가씨 결말

아가씨1부 숙희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스토리와 같은 사건에 대해 2부 히데코의 관점으로 진행 되는 스토리의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가 큽니다.

 

 

숙희가 히데코를 처음 본 후 속으로 염병. 예쁘면 예쁘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첫눈에 반합니다. 숙희는 히데코를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숙맥으로 여기며 사기꾼 백작의 농간으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될 가엾고도 가여운 아가씨로 봅니다. 그녀를 보살피면서 그녀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솟아납니다. ‘내가 지금까지 내 손으로 씻기고 입힌 것 중에 이렇게 예쁜 것이 있었나라고 생각할 정도죠.

 

그러나 사실 백작은 히데코에게 자신이 접근하는 이유를 솔직히 밝혔습니다. ‘이모부에게서 도망쳐 일본으로 가게 도와주겠다, 도망에 성공하면 유산의 반을 달라.’ 히데코는 이모부가 뒤쫓을 걸 알고 있었기에 완벽한 자유를 위한 희생양을 요구합니다. ‘없어져도 찾을 사람 없는 고아를 하녀로 들인다, 하녀와 일본으로 가서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정신병원에 갇히고 자신은 그녀의 이름으로 살아가겠다.’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하녀 타마코(본명 숙희)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히데코 : 욕을 해도 좋고 도둑질을 해도 좋은데 나한테 거짓말은 하지마. 알겠니?

 

 

히데코는 타마코(숙희)에게 엄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셨다며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타마코는 태어나는 게 잘못인 아기는 없다며 히데코 어머니는 너를 낳고 죽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고 말했을 거라고 위로합니다.

 

 

히데코는 타마코가 백작과의 결혼을 적극 독려하자 타마코의 뺨을 때리고 밧줄을 가지고 이모가 자살한 벚나무로 달려갑니다. 뒤따라간 타마코가 목을 맨 히데코를 받쳐 안아 목이 졸리지 않게 합니다. 숙희는 정말 잘못했다, 아가씨를 꾀어서 그 나쁜 새끼하고 결혼 시키려고 했다, 아가씨를 정신병원에 처넣고 도망가려고 했다, 죽지 말아라, 결혼하지 말아라며 울부짖습니다.

히데코 : 숙희야, 내가 걱정 돼? 난 니가 걱정 돼.

타마코 : 제가 숙희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히데코 : 넌 니가 날 속여 먹은지 알지? 속은 건 너야. 정신병원에 니가 들어가는 거라구. (중략) 미안해 하지는 않을게. 너도 날 등쳐먹으려고 했으니까.

 

 

서로의 속내를 알게 된 히데코와 숙희는 연대해서 백작을 속이고 유산을 챙겨 자유롭게 떠납니다.

히데코 :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백작은 코우즈키가 보낸 자객들에게 잡혀서 코우즈키 앞에 소환됩니다. 코우즈키는 백작의 손가락을 절단하지요. 백작은 담배를 연거푸 피워 자욱한 연기의 수은 성분으로 코우즈키와 죽음을 맞습니다. 백작은 죽어가면서 그건(남성의 상징)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합니다. 숙희에 의하면 아기 장난감 같은 거였지요.

 

영화 아가씨 해석 감상평

영화 아가씨의 문어는 성적 착취 도구입니다. 백작의 그림에는 문어 다리가 여자의 몸을 감싸는 장면이 있는데요. 실제로 코우즈키는 지하 수족관에 거대 문어를 키웁니다. 히데코도 히데코의 이모도 문어에게 당했다는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지하 서가 입구에 뱀 모양 조각이 있고 숙희는 뱀 조각상을 지나 서가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뱀은 남성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숙희는 뱀 조각을 시원하게 파괴하고 서가로 돌진합니다. 히데코가 낭독회라는 허울로 성적 학대를 당한 곳에서 음란 도색 소설들을 닥치는 대로 찢고 물에 던져 넣고 잉크를 풀어 파괴합니다.

 

 

어린 히데코가 코우즈키에게 질문합니다. “목을 매 자살하면 혀가 나오고 배설물도 흐르고 흉측하다던데 왜 이모는 그렇지 않았을까요?” 코우즈키는 히데코를 컴컴한 지하실로 데려갑니다. 코우즈키는 도망가려던 일본인 아내(히데코의 이모)를 잡아와서 지하실에서 고문한 거 같습니다. 고문으로 죽은 아내를 벚나무에 매달아 자살로 위장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너도 도망갈 생각하지 말아라고 조용히 협박합니다.

 

영화는 사기꾼 백작과 역겨운 변태 범죄자 코우즈키에게 한 방 먹이고 자유와 사랑을 쟁취한 히데코와 숙희를 보여줌으로써 남성의 폭력과 억압에 맞서서 해방을 일궈낸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낸 영화 아가씨를 보고 난 후 저는 영~ 찜찜했는데요.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배우들의 열연, 허를 찌르는 반전, ! 소리가 날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 소품, 의상... 정말 공들여 만들었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은 변태 성향이 강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자극적인 동성 성애 장면이 구태여 필요했을까요. 전 세계가 극찬한 영화 올드보이소문을 함부로 퍼뜨리는 것에 대한 경계라는 스토리에 15년간 감금, 부녀간의 근친상간 등 자극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저의 지력과 필력이 모자라서 표현하기 힘들었던 찜찜함’의 이유를 명쾌하게 풀어낸 컬럼니스트 황진미님의 글을 옮겨봅니다. 저는 박찬욱 감독이 스크린에 펼쳐 논 찜찜한 장면들을 보고 그저 변태라고만 생각했는데, 황진미님은 더러운 변태 범죄자 코우즈키 자리에 감독을 치환해서 통쾌함을 주네요.

그런데 생각해보자. 조선인이면서 일본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코우즈키, 외국어를 통역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다가 뼈 속까지 일본인이 되고 싶어진 코우즈키, (중략) 굉장한 서책광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코우즈키, 신체절단을 즐기는 변태적인 코우즈키, (중략) , 마지막 쇠구슬 섹스신을 통해 소환된 메타성을 통해 코우즈키를 해석해 보면 누가 떠오르는가. 외람되게도 코우즈키의 자리에 박찬욱이 놓인다.

 

<아가씨>는 세련된 연출과 문화적 혼종성이 돋보이는 텍스트로, 원작이 지닌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물론 재미도 있고 볼거리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수작으로 상찬하기는 힘들다. (중략) 그러나 레즈비언 텍스트 속에 남성적 관음의 욕망이 스미고, 문화적 혼종성 속에 스스로 조롱하듯 묘사해 놓은 식민지 지식인의 무의식이 스민다면 곤란한 노릇이다. <아가씨>를 보고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스크린 밖으로 수은연기가 자욱하게 느껴진다.’

-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어느 관객의 평점 댓글입니다.

폭력과 가학, 관음으로 상징되는 남성성에 대항하여 여성들 간의 육체적, 정신적 연대를 통해 해방을 추구하는 페미니즘 영화로 보면 되나? 아니면 스릴러 영화적 장치는 겉치레일 뿐인, 레즈비언 성행위 보여주기에 급급한 상업영화인거야? 남에게 추천해 줄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영상미에 3...’

천재적인 연출 실력으로 자신만의 색체가 강한 영화를 만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저랑 영~ 취향이 맞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겠습니다. 이상 영화 아가씨 결말 해석 감상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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