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도록 에어컨 없이 생활하려고 하지만, 교회나 카페, 음식점의 냉방을 피할 수는 없다. 얇은 바람막이와 스카프, 마스크를 상비하고 다니는데도 여름 감기에 걸렸다. 전조 증상 없이 심한 근육통을 동반하고 훅! 치고 들어온 걸 보면 독감일지도 모르겠다. 열하루 째 되는 오늘에야 건강할 때의 의욕과 기운을 되찾았다.
몸이 축축 처지는 더위에 감기까지 걸렸으니 눕고만 싶었다. 그러나 폭염경보에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감기 걸린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섰다. 걷기 앱에 나이, 키, 몸무게를 입력하니 하루 육천 보 걷기를 추천해주었다. 육천 보 받고 천 걸음 더, 목표는 칠천 보.

집 바로 옆에 용화산이 있다. 산허리를 절개해서 둘레길을 조성해 놓았다. 산에게는 미안하지만 걷기에 참 좋다. 초록초록한 길을 50~60분 가량 걸으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어싱(earthing)이 건강에 좋다는 소문에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맹렬히 맨발로걷고 싶어졌다. 아픈 몸이, 대지의 생기를 강하게 원하는 거 같았다.

분홍색 공주 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맨발로 지나쳐갔다.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다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쳐서 함께 웃었다.
그녀 – 맨발 걷기 오래하셨어요?
나 – 아뇨. 아주 가끔 걸어요.
그녀 – 잘 걸으시네요. 안 아프세요?
나 – 안 아파요. 걸을 만한데요?
그녀 – 난 아파서 몸살 났었는데...
나 – 그러시군요. 좋은 날 되세요~!

맨 발로 걸으면 수시로 발밑을 보게 된다. 길가로 나온 지렁이를 밟을까봐 겁이 났다. 길가로 나온 지렁이를 만나면 나뭇가지를 주워서 풀숲으로 옮겨 주었다. 열흘 동안 네 마리를 구해주었다. 어쩌다 밟혀 죽은 지렁이 사체엔 민들레 홀씨만한 까만 개미들이 바글거렸다.

매미 허물도 보이고 달팽이도 만났다. 길가로 나온 달팽이를 살짝 집어 올려 풀숲에 놓아주었다.

평화롭게 아름다운 숲길을 산책할 수 있음이, 감사했다. 생각해보면, 어디에 살든 살고 있는 곳을 좋아하곤 했다. 사는 곳과 주변 환경,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사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 수월하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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