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릿빛 피부에 근육질 몸매.
상당한 재력가로 여자들에게 인기 짱인 남자를 만난 것은 중학생 때였다.
동네 친구 J.
“친구야. 이거 한 번 읽어봐.”
J가 내민 책은 일명 ‘하이틴 로맨스’라 불리는 멜로물이었다.
그랬다.
내 나이 겨우 열다섯 살에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남주(남자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남주는 재력, 인물, 지능, 매너, 매력... 갖출 거 다 갖춰다.
여주는 미모, 젊음, 매력, 강한 자존심을 갖췄다.
여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돈이 필요하고 남자의 일을 해주며 돈을 번다.
처음에는 서로 마음에 안 들고 오해를 거듭하지만 자꾸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선생님들은 학업에 방해 되는 유해물 하이틴 로맨스 색출에 혈안이 돼서 학생들 소지품을 검사했다. 학생들은 교훈이 적힌 액자 뒤에 숨기거나 교탁 밑에 테이프로 붙여서 엄폐하는 등 하이틴 로맨스 사수하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내가 다닌 ‘여자 중학교’는 대부분이 여자 선생님에다 남자 선생님은 4~50대 유부남 선생님뿐인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이틴 로멘스 남주라도 사랑해야 그나마 촉촉한 감성을 지킬 수 있을 거 아닌가.
“선생님~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 주세요, 네?!”
대학을 졸업하고 일에 미쳐서 20대를 보내게 된 건,
하이틴 로맨스 남주같은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했다. 그런 남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이기 때문이드아.
간혹 남주와 근사치의 남자를 만나면, 이제 내 행동이 문제였다.
설레는 마음을 들킬까 봐 오히려 사무적이고 차갑게 굴었다.
여주들처럼 새침하게 톡톡 쏘아 댔다.
내가 여주만큼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큰 착각을 하고 살았던 거 같드아...
스물아홉 살 때,
스물일곱의 민준(가명)이 다가왔는데, ‘사랑이 사랑인 줄 몰라서’ 떠나보냈다.
하이틴 로맨스 남주 정도의 카리스마는 아니더라도,
남동생과 동갑인 남자가 애인??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사랑에 있어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걸 알았드아...
물론 상호 끌리는 상태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지긋하신 분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며 젊은 사람에게 자꾸 대시하면, 주책으로 보인다.
서른한 살 때,
스물아홉의 류(가명)를 만나고서야 남자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화성 출신이지만 남자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거.
사랑받고 싶고, 존중 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고, 따뜻한 말에 마음이 풀린다는 거...
류에게 미안한 건, 사랑이 처음이라서 내가 많이 미숙했다는 것이다.
fall in love의 사랑만을 알던 시기였다.
‘~라서’, ‘~이기 때문에’ 사랑했고 그래서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후 에리히 프롬의 'art of love, 사랑의 기술'을 장착하고 업글 인간이 된 나는,
‘~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적인 사랑’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사랑을 하면 꽁냥꽁냥 행복해 지는 것만이 아니다.
나만 알던 자아가 타인에 대한 앎과 이해로 확장되고 깊어진다.
사랑하자.
연애시절 도반(남편)이 그려준 초상화.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표정관리 하느라 힘들었다.
‘남편의 실력이 모자란 건가? 내 얼굴이 모자란 건가? 둘 다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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