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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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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 목 : 파친코 PACHINKO

저 자 : 이민진

출 판 사 : 문학사상

초판 1: 2018. 3. 9.

 

안녕하세요? 올리브나무입니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님의 장편소설 파친코를 소개합니다.

파친코1366, 2399쪽 분량인데 흡인력 있는 전개로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민진 작가의 부모님은 작가가 일곱 살인 197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이민갑니다. 이민진님은 일요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로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기업변호사로 일합니다. 그러나 B형간염으로 변호사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글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민진 작가에게 너는 왜 줄곧 한국인에 대한 글을 쓰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들도 한국인이다. 한국인에 대해 쓰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이민진 작가는 이민 1.5세대로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파친코의 첫 문장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많은 비극적 사건이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기가 바뀔 무렵, 나이 든 어부와 그 아내는 돈을 더 벌어 보려고 하숙을 치기로 했다.’

소설은 19세기 말부터 1980년대 까지 5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삶의 터전을 일본으로 옮기고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채 모진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매스컴은 4대에 걸친 이야기라고 하지만 저는 나이든 어부 부부도 끼워 넣고 싶습니다.

1대 나이든 어부와 그 아내. 2대 김훈과 양진.

3대 선자와 백이삭. 4대 백모자수(모세의 일본식 발음)와 유미. 백노아

5대 백솔로몬.

 

 

어부와 그 아내에게 유일한 자식은 언챙이에 절름발이인 이입니다. 다른 자식들은 병으로 죽고 소에 받쳐 죽었습니다.

‘1910, 훈이가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에 조선은 일본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훈이의 어부 아버지와 어머니는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신체 건강하고 검소한 시민일 뿐이었다.’

 

부지런하고 어진 성품의 훈이가 스물여덟 되던 해에, 먹을 것이 없어서 입을 덜어야 하는 집의 막내딸 양진을 아내로 맞습니다.

양진은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열다섯 살 여자애라고 중매쟁이가 말했다.’

 

양진은 세 명의 아이를 차례로 잃습니다.

양진은 자기 자식만큼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훈이는 아내가 출산하고 나면 시장에 가서 미역을 사다가 직접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아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매번 따뜻하고 달콤한 떡을 사다 주며 이렇게 말했다. “묵어야 힘이 생기지.”’

 

마침내 양진은 선자를 낳았다. 네 번째 아이이자 유일한 여자아이인 선자는 건강하게 자랐다.’

훈이는 선자의 완벽한 모습에 감탄했다.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딸아이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아버지는 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장이 깔끔하고 간결해서 행간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선자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날 훈이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훈이의 장례식에서 양진과 선자는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쳐서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젊은 미망인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일상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잃은 슬픔마저 사치인, 양진의 애달픈 삶...

여기까지가 11쪽부터 20쪽까지고 첫 꼭지 부산의 작은 섬, 영도내용입니다.

 

이민진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해서 완성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나는 1989년 이 이야기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때 나는 대학 3학년이었고,.....

예일대학의 초청 강연 시리즈 중 하나인 마스터 티라는 강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사는 미국인 선교사는 식민지시대에 이민 온 조선계 일본 사람들이나 그들의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라는 용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 용어는 말 그대로 일본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는 그러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고,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자아이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사망했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패자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해 줄까요?

문학은, 문학적 표현, 치밀한 얼개, 재미있는 이야기 자체로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문학이,

약자이기에 소외된 사람들,

사회적 패자이기에 소리가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널리, 강하게 파급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입니다.

 

파친코의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를 몇 차례에 걸쳐 다뤄보고 싶네요.

 

양진이 남편 훈이의 장례식에서 펑펑 울고 난 다음날,

일상을 살아냈다는 부분을 읽으며 생각난 시가 있습니다.

류시화님의 엔솔로지, ‘마음 챙김의 시에 수록된 시입니다.

누군가에게 삶을 살아낸다는 건,

선승의 염불이 가 닿을 수 없는,

몸으로 닦아 나가는 도의 경지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목재 트럭 운전사는 선승보다 일찍 일어나는가.

- 게리 스나이더

 

높은 운전석에 앉아서

동트기 전 어스름 속

 

광나게 닦인 바퀴 휠이 번뜩인다.

빛나는 배출 가스 연소탑은

열을 받아 헐떡거리며

타일러 비탈길을 올라가

푸어맨 샛강 위쪽 벌목장으로 간다.

수십 킬로미터 먼짓길.

 

다른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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