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그림을 잘 그리셨다.
그 재능이 큰언니에게 물림되어 언니는 그림을 참 잘 그렸다.
엄마는 6.25 전쟁도 비껴간 충남 시골에서 부족하지 않은 집 막내로 태어났다.
학교에서 줄곧 1등만 하며 자부심이 대단했던 엄마는,
서울로 시집오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셨다고 한다.
196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끼니를 걱정하던 엄마.
‘내 자식들도 중학생 교복을 입을 수 있을까?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
내 자식들에게는 가난하고 못 배운 설움을 물려주지 않으리라!’
나와 여덟 살 터울의 큰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다.
실컷 잠 자보는 게 소원일 만큼,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엄마는
위로 두 명은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켰고,
아래로 세 명은 경희대, 숙명여대, 한양대까지 공부시켰다.
땀 닦을 틈도 없이, 단내 나는 숨을 몰아쉬며
벽돌을 나르느라 손가락 뼈가 휠 정도로 고통을 감내한 엄마는,
큰언니를 미술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해했다.
태어나는 순서가 바뀌었다면,
내가 전산학과에 가는 대신 큰언니가 미술대학에 갔을 것이다.
천성이 강인하고 낙천적인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우리 자식들은 해 주는 밥 먹으면서 왜 서울대를 못 갔을까?”
그런데 자서전에는 딴 소리를 쓰셨다.
“과외는커녕 학원도 한 번 보내지 못했는데 대학에 합격해서 자랑스러웠다.”
엄마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큰언니가 네 명이나 되는 동생들 끼니를 챙겨주곤 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고 혼자 있고 싶은 사춘기인데 동생들이 얼마나 귀찮았을까.
큰언니는 음식 솜씨도 좋았다.
결혼한 언니 집에 방문할 때마다 두 그릇씩 먹었다.
큰언니는 세련된 감각이 있어서 옷을 맵시 있게 입었다.
아버지는 언니가 골라 준 옷들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언니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유명 메이커였던 원아동복에서 잠바를 사 주었다.
분홍색에 흰 물방울 무늬가 종종종 찍힌, 예쁜 봄 잠바였다.
큰형부와 두 명의 조카들은 큰언니 덕에 보기 좋은 차림새였다.
큰언니는 중학생인 내게 자물쇠 달린 일기장을 선물해 주었다.
예쁜 내지內紙가 맘에 쏙 들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보곤 했다.
주저리주저리 잔뜩 멋을 부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치면 진솔한 글도 썼다.
이후 여러 곳에서 글짓기 상을 탔는데,
큰 언니가 자물쇠 달린 일기장이라는 멍석을 깔아 준 덕분일 것이다.
큰언니는 세계문학전집도 들여 놓았다.
문학전집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책 등에 적힌 스탕달, 똘스또이, 에밀 졸라...가 친숙해졌다.
나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지능 덕분에
공부를 애써서 하면 100점, 안 하면 90점을 받았다.
겨우 10점을 더 받자고 공부에 힘을 쏟고 싶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빨리 돈을 벌어서 펑펑 쓰고 싶었다.
큰언니가 말했다.
“니가 사회를 아직 몰라서 그래! 대학에는 꼭 가야돼, 꼭!!”
나는 모르는, 사회의 차별을, 경험했을, 나의 큰언니.
언니와 언니의 두 아들과 함께 미술 전시회에 다녔던 것도 좋은 추억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샤갈, 마티스, 인상파...의 전시를 보고
아웃백 스테이크나 토니 로만스 같은 곳에서 식사를 했다.
언니의 큰 아들은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큰언니가 읽었다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나도 읽었다.
언니에게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를 추천해 주었다.
큰언니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내가 예닐곱 살 때 털실로 내 벙어리장갑을 떠 주었다... 고 기억한다.
(내가 예닐곱 살이면 언니는 열너댓 살인데 그게 가능한가?
내 기억의 오류인가?)
둥그런 모양의 아이들 가방도 떠 주었는데
토끼를 수놓은 그 가방을 무척 애지중지했었다.
그런데 가방을 버스에 두고 내려서 두고두고 속상했었다.
버스 종점이 집과 가까워 찾으러 갔지만 찾지 못했다.
요즘 언니는 뜨개질과 바느질에 푹 빠져 지낸다.
어딘가에 집중해 본 사람은 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언니도 나도 살림할 시간이 없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문광 집사’같은 분을 모셔야한다.
누구나 좋은 향기를 좋아하지만 언니는 특히 좋아한다.
아로마 테라피를 공부했을 정도다. (직업을 염두하고 공부했지만.)
잘 볶은 신선한 원두를 핸드밀로 천천히 갈아서
크레마가 잘 생기는 뉴브리카로 추출해서 마신단다.
원두가 든 보관 용기를 열었을 때의 향기가 가장 좋다고 한다.
지금,
내 방에도 오래되어 마실 수 없는 원두 가루와
모카포트 추출이 끝난 원두 가루를 여기 저기 놓아둬서
커피 향이 코끝에 감실대고 있다.
지지리도 가난한 가정에서
맏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내가 천방지축 자유분방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딸 중에 막내였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러니 언니들에게, 특히 큰언니에게 은혜를 빚졌다.
나는 언니에게 받은 기억만 있는데
언니는 내게 못해 준 한두 개를 기억하며 아쉬워한다.
내가 벤처기업에 다닐 때,
딱 한 번 언니와 롯데 백화점에 간 적이 있다.
“네가 필요한 거 뭐든지 다 고르라고 했을 때 있었지?
형부랑 조카들 거까지 다 고르라고 했을 때.
내가 무척 힘들 때였는데 기분 좋은 위로가 되었지.”
클래식 음악과 그림 감상에 재미를 느끼는 큰언니.
바느질과 뜨개질로 예쁜 작품을 만드는 큰언니.
큰언니가
언니의 섬세한 취향을 이해해 주고
취향을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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