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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 16회 줄거리 결말 (최종회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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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그들의 사는 세상을 엿보는 재미를 주던 드라마 마인이 종영했습니다.

마인 최종회인 16회를 보게 만든 힘은

한지용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

서희수는 왜 기억상실 연기를 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마인 16회 줄거리 결말, 최종회 스포일러 다량

 

서희수는 한지용이 죽은 날의 장면이 계속 떠올라 괴로워합니다.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집요하게 압박하는 형사에게 말합니다.

희수 : 아무래도 한지용을 내가 죽인 거 같아요.

그런데 어쩌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도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정말 희수가 죽였을까요?

희수의 살해 동기는 충분합니다.

2년 간 불륜관계였던 여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였으니까요.

게다가 그 불륜녀는,

희수가 자신의 전부처럼 아끼는 의붓아들의 친모였습니다.

 

한지용이 죽던 날의 사건은 이렇습니다.

한진호의 살인 교사를 받은 김성태는

한지용 살인을 시도하지만 중간에 멈춥니다.

 

죽다 살아난 한지용은 서희수가 그간 저지른 일들을 자수하라며 옥죄자 그녀를 죽이려는 행동을 합니다. 이를 본 주집사가 한지용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한지용은 추락사하게 됩니다. 결국 주집사가 범인이었습니다.

 

서희수가 기억상실인 척 연기한 이유는, 아들 한하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하준의 기억 속에 한지용은 따뜻하고 멋진 아빠로 남기고 싶었던 거죠. 이미 아빠의 죽음으로 크나큰 슬픔에 빠진 하준에게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비밀에 붙이고 싶었던 겁니다.

 

겨우 그만한 일로 서희수가 기억상실 연기를 했다고? 어찌 보면 시청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백미경 작가도 그걸 염두에 뒀나봅니다.

 

서희수 : 기억상실을 연기하면서까지 지키려했던 게 하준이란 걸 이해할 수 있나요?

강자경 : ! 이해할 수 있어요. 엄마니까요!

 

법륜스님이 늘 말씀하시는 게 있습니다. 부부사이가 아무리 안 좋아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엄마, 좋은 아빠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아이들이 올바로 큰다고요. 아이들 앞에서 상대 배우자를 헐뜯는 어리석은 행동은 정말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정서현은 동서인 서희수가 한지용을 죽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전적인 신뢰로 서희수를 도와주죠. 정서현이 희수를 향해, “동서가 여기서 나가도록 내가 도와줄게.”, “아무 걱정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할 때 묘한 위로가 느껴졌습니다.

 

서희수는 강자경과 연대해서 하준을 잘 키우기로 합니다.

철저하게 서희수를 유린하며 서희수의 남편과 아이를 빼앗기 위해 잠입한 강자경이 서희수와 연대하게 된다는 설정은 억지스럽습니다.

 

백미경 작가는 자신의 억지스런 설정에 어떤 개연성을 부여했을까요?

1. 강자경이 서희수가 하준을 정말 사랑하는 걸 알게 된 점

2. 서희수가 배신감의 충격으로 강자경 앞에서 유산한 점

3. 자경이 한지용으로부터 다시 버림받은 점

 

도덕 윤리 따위 말아 먹은 표독스런 강자경의 개과천선은 그렇다 쳐도, 서희수는?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강자경을 자기 옆에 두고 한 편으로 받아들이다니, 작가의 여성 연대 판타지가 지나치다고 생각되네요.

 

배우였던 서희수는 드라마 마인으로 복귀하고 효원그룹 대표가 된 정서현은 마인제작사에 투자합니다.

 

마인의 주제를 구태여 찾자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을 지라도,

자기 자신은 자기가 지키며 삶을 지속해야 한다.’ 정도.

 

엠마 수녀는 수녀복을 벗습니다.

엠마 수녀를 찾아온 정서현에게 세상 편견에서 자유로워지라고 합니다.

 

정서현은 동성애였던 첫사랑에게 전화를 겁니다.

만나자고. 보고 싶다고.

 

이건 좀 아쉬웠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헤어지는 것이 아름다운데요.

정서현이 효원 그룹 대표로 멋지게 기업 운영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미국 드라마 ‘six feet under’영화 필라델피아’,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었습니다. 십년 전쯤 신촌 거리를 걷다가 퀴어 축제를 직접 봤는데 혐오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에 동성애자로 살다가 청산한 남자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달리는 뒷모습이었는데, 뒤에서 ㄸ물이 줄줄 흘러서 바지를 적시는 걸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동성애자들 중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게다가 위생과 안전장치 없이 인스턴트 만남을 하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서로 전파한다고 합니다.

 

해당 영상에서는 유전적으로 동성애자가 될 확률보다 호기심에 동성애자가 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더군요. 정확한 데이터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성경 레위기 1822절에는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에 호기심이 강한 청소년기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을 차별하고 정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봅니다. 이 부분이 많은 기독교인들과 저의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적인 사고를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용사로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것들을 쳐부수며 천국에서 빛난 면류관을 받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죽는 날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살다가 하늘나라 갔을 때, 눈에 띄지 않는 말석에서 주의 얼굴을 뵙는 걸로도 무지 행복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빛난 면류관과 말석으로 차별된다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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