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삶 사랑.../일상 소소한 이야기

언어의 기표와 기의

반응형

어제 운동을 다녀온 도반(남편)이 호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우리 포동이 주려고 가을을 가져왔지~ 손 내밀어 봐.”

! 진짜 가을이네! 예쁘다~ 도서관 뒤쪽 산책로에서 주웠어요?”

그렇지. 열심히 걷고 있는데 앞에서 갑자기 딱! 하고 떨어졌어.

천둥소린 줄 알았네!”

(~ 오버야.)

 

오늘은 가을을 주워 온 기념으로 저녁에 추어탕 먹으러 가자.”

“(짱구 춤을 추며) 훌라훌라~ 추어탕 콜!”

외식이 너무 잦은 거 아닐까 우려도 됐지만 도반의 컨디션이 좋으니까 외식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원 추어탕도 테이블마다 테블릿을 이용한 주문을 준비 중이었다.

 

늘 시키던 대로 추어탕 2인분, 추어튀김 작은 것 하나, 막걸리.

 

도반 : 요즘 왜 친구들 안 만나?

: 코로나 확산으로 약속을 자꾸 미루게 돼요.

근데... 나는 일상의 소소한 수다보다 영화나 책에 대한 얘기가 재밌어.

 

도반 : 친구끼리 소소한 수다도 떨고 그러는 거지... 나는 말을 참 못하는 사람이야.

 

: 오빠가?? 내 생각에는 내가 만난 사람들 통틀어서 오빠가 말을 제일 잘하는 거 같은데?!! (말이 제일 많기도 하구~)

 

도반 : 나는 다섯 살 때까지 별 말을 안 해서 부모님이 말이 늦다고 걱정하셨데.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를 통해 마음과 생각을 전달 받을 수 있었어. 누구와 있든지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거든.

그러다가 내가 세상의 언어체계에 의한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능력을 잃었어.

 

: ... 놀랍다... 오빠가 태어나기 전에 영혼 상태의 기억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야!

 

연애 시절, 영혼의 기억에 대해 듣고 왕또라이 아닌가 했었다. 나에게도 왕또라이 기질이 있으니 쌤쌤(same same)이라 계속 만났다.

 

: 오빠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을 김초엽이라는 젊은 작가가 SF 소설로 썼어요. ‘공생가설이라는 단편소설이야.

 

도반 : 그래? 난 잘 모르는 소설가네.

: 외계생명체가 인간이 탄생할 때부터 다섯 살까지 인간 안에 공생하면서 인간답게 성장하도록 돕는데. 그러다가 다섯 살이 되면 아이의 기억과 함께 몸을 떠난다는 내용이지. 우리가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별로 없는 건 그래서래.

 

우리가 유아기의 기억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뇌 심리학자들은 뇌 속의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성숙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편도체는 생후 몇 개월 만에 성숙하지만 해마는 만 4세를 전후하여 성숙한다.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인지를 담당하는 해마가 각기 다른 시기에 성숙하면서 감정과 인지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4세 이전에 강아지에게 물린 적이 있다면 강아지가 무섭다는 느낌은 남아있지만 강아지에게 물렸다는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EBS 60분 부모 중에서

 

도반 : 우리의 마음은 언어라는 기표로 다 표현할 수 없지. 문맥을 통해 전체적인 감을 잡고 말하는 이의 마음을 살필 수 있을 뿐이야. 때문에 태생적으로 언어는 오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어.

 

: 기표와 기의가 일치해서 오해 없는 언어로 아담의 언어라는 게 있어요. 만들어낸 말이지만. ‘소나무라고 기표하면 모두의 머릿속에 소나무가 같은 모습의 기의로 떠오르는 거지.

 

도반 : 태초에 아담 시대는 이브 밖에 없는데 뭐 복잡할 게 있었겠니. 그 시대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 소설가 김훈님은 생각, 느낌, 감정을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음에 비루하다는 표현을 했던 거 같아요. 보통 사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언어를 부리는 분이면서도.

 

도반 : 비루할지라도 언어는 사고의 촉매제 역할을 하지.

 

: 언어를 벼리는 직업이 아니라도 많은 단어를 알아야 사고의 넓이나 깊이가 확장될 거 같아요.

 

도반 :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저 매일의 삶에서 깨달아지는 지혜도 많으니까.

 

: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이런저런 생각을 펼치다가 자신의 어휘가 표현할 수 없는 생각에 이르자 사고가 멈췄다는 얘기가 나와요. 소설 제목이 크눌프였던가. 어휘력이 사고력을 결정하는 거 같은데.

 

도반 : 글이 곧 그 사람은 아니지만 글은 사람을 반영하지. 글에는 쓴 사람의 생각 DNA가 녹아 있어.

 

: 글은 아름답게 쓰는데 생활은 그렇지 못한 분도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안 하는 작가도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은 작품 속에 다 들어 있으니 부연하고 싶지 않다고요. 나는 오빠랑 이런 대화 시간이 좋아요.

 

도반 : 포동이가 현학적이라서 그렇지.

: 뿐이야? 지적 허영심은 아주 그냥 하늘을 찌르지?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도 잘 하는구만. ‘나도 포동이랑 대화하는 시간이 좋구나라든가 포동이가 좋아하니 다행이다라든가 아님 그냥 씨익 웃던가... 이런 긍정적인 피드백을 기대하는 건 내 욕심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나한테 성격 참 좋다고 하는데 오빠가 보는 나는 현학적이고 고집 세고 눈치 없고... 그런가요? 

 

도반 : 대부분 사람들에게 성격 좋다는 말을 듣는 건, 네 의견이 없다는 거야. 혹은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거나.

: 맞아요. 내 의견을 잘 피력하지 않았어요.

 

사소한 것에 내 의견을 피력하지 않다보니 사람들의 오해를 사곤 한다. 미소 띤 얼굴로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내가 아주 착하고, 순진하고, 자신과 의견이 같을 거라는 오해.

 

요즘들어 글 쓸 때 뿐 아니라 대화할 때도 상대와 다른 내 의견을 피력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에너지가 조금 더 드는 일이긴 하겠지만 오해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블로그의 다른 글 읽기

말복 복달임 추어탕에 탁주 한 잔

생각하는 기계 vs. 생각하지 않는 인간 리뷰

팔도 비빔면과 비비고 김치왕교자 만두 JMT

(아래 공감누르기는 더 잘 쓰라는 격려가 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