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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삶 사랑.../사람, 사랑, 연애, 결혼 이야기

결혼이란 2인 3각 경기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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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7년 전 쯤, 자작 소설을 발표하고 서로 평가해 주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댓 명 회원들이 모였는데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만으로도 우리는 친밀감을 느꼈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 소설가도 서너 명 있었다.

소설가 L언니 : 저는 가게 주인이 저를 알아보면 다시는 그 가게에 안 가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나도 그런 성향이 있었다. 주인의 아는 체와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익명성을 좋아했다고나 할까. 트렌드 코리아 2022에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을 나타내는 내용이 나온다. “주인이 나를 알아보는 거 같아요.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어요.”

 

K언니는 매주 남편 흉을 독하게 봤다. 언니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디는 방법으로 소설 쓰기를 택했다고 한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왜 불행한 결혼 생활을 견디는가 의아했다. 결혼하고 나서야 이혼이 쉬운 게 아니란 걸 알았다. K언니는 남편 흉이 누워서 침뱉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K언니 : 이렇게 흉이라도 보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전자책으로 들었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지미는 커피 로스팅 가게 사장이다. 그녀는 가끔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녀는 종종 민준에게 남편 흉을 봤는데 어느 날,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한 계기를 민준에게 털어 놓았다.

 

"그 사람이 차려놓은 저녁을 먹으며 내가 물었어. 요즘 왜 이렇게 잘하냐고. 그러니 이렇게 대답해. 내가 잘해서라고. 내가 잘해서 자기도 잘하는 거래. 내가 또 물었어. 그럼 예전엔 내가 잘 못해서 그랬던 거냐. 그러니까 그렇대. 그럼 그간의 모습들은 내가 잘 못해서 일부러 만들어 낸 모습들이냐, 이렇게 물었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실은 그렇다. 언젠가부터 연기를 했다는 거야. 왜 그래야만 했냐고 물었더니 내가 자기 자존심을 망가뜨렸대. 자기가 게으르고 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언젠가 너무 노골적으로 지적하더라는 거야. 그래서 화가 나서 더 엇나가는 척 굴었대.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혼을 결심했어. 한순간에 다 끝이 나더라.”

 

지미는 어머니 세대가 남편 흉보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그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거였어. 자기가 남편인 줄 아는 아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등골이 다 휜다. (중략) 자존심은 어찌나 센지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기가 팍 죽거나 화를 버럭 낸대. 아주 지긋지긋하대. 그러면 주위 어른들이 이렇게 추임새를 넣어. 안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 다른 남편도 다 그런다. 맞추고 살아라. 나는 그게 싫었어. 왜 아들하고 결혼을 해. 왜 다 맞춰줘야 해. 그래서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거야.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진 거고. 저번에 말했지? 내가 졸라서 결혼했다고. 그런데 그날 저녁 알게 된 거야. , 나도 자기가 남편인 줄 아는 아들과 결혼을 한 거구나. 애랑 살았던 거구나. 그 순간 하나의 사실이 명확해졌어. 그 사람과 살며 내가 너무, 너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거. 그 사람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어.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고통스러웠어. 그런데 그게 다 그 사람이 일부러 했던 행동 때문이라는 걸 알았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말했지, 이혼하자고.”

pixhere


R은 지미의 남편보다 더한 사람이었다. 지미의 남편처럼 상대가 잘해주면 그 보답으로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꽤 괜찮은 사람이다. 서로 잘 하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노력이 있다면 관계의 발전은 가능하다고 본다.

 

R이 세 번째 큰 배신을 했을 때, 내 인생에서 영원히 아웃!을 선고했고 R사랑한다며 애걸복걸 매달렸다. R, 그렇게 매달리면 이전에 그랬던 거처럼 유야무야 넘어갈 줄 알았을 것이다. 미운 정이라도 있었을 때는 매달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헤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오만 정이 다 떨어진 후라 매달리는 모습이 소름 돋도록 추해 보였다.

: 네가 매달리는 건,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야. 너도 알 거야. 네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그간 너에게 제공한 것들이라는 걸.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지미는 말한다. ‘그 사람과 살며 내가 너무, 너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거. 그 사람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어.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고통스러웠어.’

지미의 심정, 너무도 잘 안다. 결혼 생활이란 어쩌면 23각 경기 같은 게 아닐까. 둘이 하나둘 하나둘호흡을 맞춰 하루하루 걸어가는 거. 박자가 어긋나면 넘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핫둘~ 핫둘~’ 함께 걸어가는 거.

 

도저히 박자가 안 맞으면 함께 걷기가 괴로워서 묶인 끈을 풀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함께 묶인 상대의 발이 10톤짜리 바위같이 느껴져서 끊어 버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23각 파트너가 10톤짜리 바위 같다면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래도 지미의 ‘그 사람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어.’라는 말은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내가 상대의 부족한 점을 포용할 만큼 아주 큰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고통을 크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나에게 고통을 줄 수는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 제공자는 상대일 수 있지만 고통을 느끼는 주체는 오롯이 나다. 그래서 고통에서 거리두기를 해야 할 사람도 나다. '이 일이 십 년 후에도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이 일이 세상이 무너지는 거 보다 고통스러울까?'...... '누구누구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원망보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방향에 방점을 두려고 했다. 고통의 한 가운데서는 그게 쉽지 않았지만.


pixabay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여자 질문자.

남편이 하는 일마다 안 풀려서 경제력이 없습니다. 저 혼자 집안 경제를 감당하려니 너무 힘이 듭니다.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요.”

법륜 스님 : 목소리만 들어봐도 자기는 완벽한 여자예요. 그러니 남편이 숨 쉴 수가 없어요.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문제예요.

질문자 : 아니요... 남편은 저에게 매일 미안하다고 합니다.

스님 : 남편 기를 팍 죽여 놨으니 미안하다고 하겠지.

질문자 : 저는 잔소리도 일절 안 합니다. 저희는 싸움도 하지 않습니다.

스님 : 그렇겠지. 자기 생각에 남편이 수준이 안 맞아서 싸움도 안 하는 거예요. 남편은 아~무 문제없어요. 자기 때문에 기가 눌린 게 문제예요. 매일 이렇게 기도하세요. ‘제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남편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옛날의 R에게도 지금의 도반에게도 나는 잔소리 하지 않았다. 나라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내는 모습을 보면 수준이하라고 생각해서 상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님 말씀에 뜨끔하며 많은 부분 수긍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미나 나 같은 여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말씀임에는 틀림없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게 ‘교만’이라서 내 안에 교만이 가득하면 축복 받을 자리가 없다.

 

순전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남녀 불문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을 꼽자면 이렇다.

1. 좋은 것을 아낌없이 함께 나누려는 배려가 없다면 혼자 살았으면 한다.

2. 스스로 벌어먹을 능력이 없다면 혼자 살면서 혼자만 고생했으면 한다.

3. 일부일처제를 지킬 자신이 없다면 혼자 살았으면 한다.

4. 상대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혼자 살았으면 한다.

......

 

내가 가장 찔리는 항목은 4번이다.

그러니 법륜 스님이 알려주신 기도를 매일 읊조릴밖에.

제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남편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법륜스님 : 내가 하는 말을 나는 다 지킬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럴 자신이 없어서 난 혼자 사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결혼해서 사네~ 못사네~ 쩔쩔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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