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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화장과 21세 여대생에게 고백한 48세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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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상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 화장에는 오십대의 화장품 회사 오상무가 신입여사원 추은주를 연모하는 내용이 나온다. 소설의 제목 화장은 2년 간 암투병하다 운명한 오상무 아내의 화장(火葬)과 젊은 여자 추은주의 화장(化粧)이라는 중의가 있다. 김훈의 소설 화장과 실화 ‘21세 여대생에게 고백한 48세 남자에 대한 포스팅이다.

 

김훈의 화장 심사평

김훈의 화장에 대한 2004년 이상 문학상 심사평은 보기 드문 유려한 문장으로(중략) 모든 소멸해가는 것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 그 틈새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그려내며 인간 존재의 내면을 심오하고 신비스럽게 표현했다.이다. 화장은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2015년 개봉했다.  

 

영화 화장

 

오상무의 추은주를 향한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연모는 다름과 같이 묘사된다.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이나 허기일 것입니다. 아니면 눈보라나 저녁놀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말의 환영일 테지요.’

 

추은주를 향한 오상무의 연모는 오로지 마음속을 흘러갈뿐이고, 고백이라는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나 눈보라나 저녁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환영일 뿐이다. 오상무의 감정은 기갈이나 허기처럼 강렬한 욕구이겠으나 꾸욱꾹 눌러 안으로 삼켜서 삭히고 있다. 오십대의 품위는, 이렇게 지켜지는 것이다. 젊은 여자를 보고 감정이 일어난 거까지 비난하지는 말자.

 

21세 여대생에게 고백한 48세 남자 이야기

 

반면 21세 여대생에게 고백한 48세 남자는 어떤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48세와 21세는 정말 안되는 걸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48세인 글쓴이의 직장에 21세 여대생이 아르바이트로 들어왔고 알고 지낸지는 두 달 조금 넘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누군가에게 설렌 지 20년 가까이 됐고, 나이 먹어서 이제 누굴 봐도 설레지 않는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대생을 알고 나서 다시 가슴 뛰는 사랑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글쓴이는 자신의 마음을 여// // 여대생에게 고백했고, 매번 거절당했다. 글쓴이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힘들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왜 이렇게 슬프고 가슴이 아픈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고 견디기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한 네티즌은 본인은 심장이 뛰겠지만 그 학생과 부모는 심장이 내려앉을 것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영화 화장 추은주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이렇게나 어렵다는 게 놀랍다. 내가 스물한 살 여대생이라면 48세 아저씨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도록 싫을 거 같다. 한 번의 고백도 끔찍한데 여// // 고백이라니! (48세 남자님아, 입장 바꿔 님이 스물한 살인데 마흔여덟 살 아주머니가 여러 차례 고백하면 어떤 느낌이겠습니꽈?) 절대! 부모 자식뻘 사람들의 사랑을 비하하자는 말이 아니다. 사랑은 나이도 국경도 초월하니까.

 

내가 짚고자 하는 건, 부모 뻘인 사람이 혼자만의 감정으로 나이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돌진하는 경우. 한마디로 나이 값을 못하고 주책이 풍년인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몸은 늙었는데 춘정을 주체 못할 때 쓰는, 그런 말이 아니다.

 

소설 화장 속 오상무처럼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애정하고 연모하고 그리워하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사랑의 감정은 사고처럼 생기기도 하는 거라지만 마음속으로 해라, 속으로만! 순전히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일곱 살 이상 차이가 난다면 연하가 먼저 다가서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연하가 마음에 든다면 섣불리 고백할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호감 표현에는 맛있는 음식을 사 준다거나 투썸플레이스나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선물한다거나 소소하게 일을 도와준다거나가 등등이 있겠다. 호감을 잘 받아 준다면 관계 발전의 기회가 있는 것이고 서너 차례 호감 표시에 계속 부담스러워 한다면 마음을 접는 것이 좋다. 열 번 찍으면 스토커 범죄가 된다.

 

 

그런데 서른 중반 이후 싱글들의 친목 모임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경제력 빵빵하고 동안에 보기 좋은 외모, 몸매 관리 잘 돼 있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린 사람들의 대시를 많이 받더라. 심지어 연인이 자주 바뀐다는 소문이 났는데도 불나방 같이 달려들었다.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과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하구나 생각했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 경제력, 외모, 학벌과 함께 어린 나이가 경쟁력이 된다. 싱글 친목 모임 회장이자 결혼 정보 회사를 운영하는 B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날 경우 한 살 차이 당 1억 원의 지참금을 준비해야 한다고 농담했다. 열 살 차이라면 나이 많은 쪽이 10억 상당의 지참금이 필요하다는 농반 진반의 말이었다. 지극히 속물적이라 거북했지만 일정부분 뼈 때리는 현실이었다.

 

유명한 수필가가 결혼 적령기가 없다는 글을 썼다. 경제력, 외모,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결혼 적령기가 분명히 있다. 서른 중반이 넘으면 나와 외적 조건이 비슷한 남자는 나보다 어린 여자를 택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선택의 기준은 까다로워져서 나보다 못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연애 결혼 콘텐츠 유튜버의 의자 뺏기 게임 비유는 촌철살인이었다. 여자에게 결혼은 의자 뺏기 게임과 같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의자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빈약하거나 다리 하나가 기울어진 것만 남게 된단다. 더 시간이 흐르면 앉기는커녕 목발로 쓰기에도 부족한 의자만 남게 된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말이다. 남녀 공히 서로에게 앉아서 쉴만한 의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당당하게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종종 파트너의 쉼터가 되어줄 만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한 사람 인생에 무거운 짐이 된다.

 

세 명의 연하와 이별 후 ‘no more 연하!’의 슬로건 아래 드디어 연상인 도반을 만났다. 도반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선비같은 점잖음과 어른스러운 인품이었다. 같이 살아보니 어른스럽긴 개뿔! 도반 입장에서는 착하고 이해심 많아 보여 선택했는데 착하긴 개뿔!이겠지. 우리는 서로를 탓하기 보다 본인이 사람 보는 눈 없음을 인정한다. 에효~ 

 

처음 만날 때 고소득 전문직인 도반의 재산은 나의 열 배 이상이었다. 나는 도반보다 여덟 살 어리다. 살아보니 도반은 아내가 어리다는 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구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 재산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구나 느끼고 있다. ㅎㅎㅎ 타이핑하면서도 실실 웃음이 난다.

 

이 글의 요지는, 특별히 내세울 거 없이 나이가 서른 후반 이상이라면, 일곱 살 이상 어린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고백하지 말자는 거다.

 

우리나라는 노령이 진행되는 노령화 사회를 넘어 이미 노령 사회가 되었다. 안티 에이징 산업은 해마다 더 큰 규모로 커지고 있다. 그렇게 몸의 노화를 억제하고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것에만 신경 쓰다가 나이에 걸맞는 지혜, 정신의 고양에는 소홀해지는 것이 아닌지. 나이가 들어도 상대와 입장을 바꿔 보거나 객관적인 자기 인식(self awareness)이 부족해서 스물한 살에게 여// // 고백하는 마흔여덟 살 남자 같아지는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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