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과민성대장증상인 걸 몰랐다.
긴장 하거나 맵거나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아랫배가 예민해졌다.
아주 가끔,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져 난감할 때도 있었다.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도반 –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쑨이 만큼 대장이 예민하지 않아.
사람들은 정작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
도반은 유산균을 챙겨먹게 했고 식이섬유가 많은 나물 위주로 식사하라고 했다.
덕분에 아랫배가 많이 편안해졌다.
도반 – 날쑨이는 내 덕분에 건강해진 줄 알아라~
나 – 정말 그래요~ 어우야~ 오빠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
알콩달콩 시기에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도반이 여기 저기 혈을 눌러주었는데
신기하게 통증이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면 약국의 갈근탕도 챙겨주고
이러 저런 약초를 넣어서 차를 끓여주었다.
어제 저녁은 속이 좀 불편해서 먹지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데 도반이 뜨거운 차를 갖다 주었다.
계피향도 나고 꿀맛도 나는, 맛있는 차였다.
치병 중인 도반이, 겨우 속이 조금 불편한 아내를 위해 차를 내온 것이다.
도반 – 이거 마시고 오늘은 일찍 자라.
나 - (일어나 남편을 꼬옥 안으며) 고마워요~ 싸랑해요~
달달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도반은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영혜 남편같이 굴 때도 적잖았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순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그녀의 머릿속이, 그 내부가, 까마득히 깊은 함정처럼 느껴졌다.’
- 한강 저, 채식주의자 중에서
도반을 포함한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오래 전에 유명 소설가인 구효서님, 윤대녕님을 모시고
소설반 클래스 동기들과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다.
좌중에 한 명이 소설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윤대녕님이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깊이 알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천착하다보면
나와 타자, 모든 인간의 심연을 알게 될 거 라는 말로 들렸다.
칼 융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집단무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나도 가끔씩 낯선 나를 발견하는데
누가 감히 타인을 속속들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고한 생명을 해하는 범죄자를 향해,
경비원을 죽음으로 몬 갑질 입주자를 향해, 나는 분노한다.
나는 흉악범처럼, 갑질 입주자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독립의 희망은 전혀 안 보이고 누대로 일제 강점기로 살아가야 할 거 같은 시기에,
항일 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침몰 하는 배의 선장이라면, 승객들을 구하려고 침몰하는 배에 남아 있었을까?
10~30대에 낙nak태tae를 거부하고 미혼모가 될 수 있었을까?
(얼마 전, 애드센스 정책위반이라는 메일이 왔다.
책 소개 글, ‘자기앞의 생’에 창chang녀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나는,
항일 운동가, 배에 남아있는 선장, 미혼모이기를 선택하고 싶다.
지금 같아서는 선택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정말 정말 찐 상황에서도 똑같이 선택할 수 있을까.........
낙nak태tae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비난은 논외로 하자.
(성교육과 피임법은 제발 좀 철저히 교육하고 개인이 잘 좀 실천하자, 쫌!)
낙nak태tae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만 생각해 보자.
‘결혼과 가족관계’라는 교양 수업에서 낙nak태tae 수술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혼외임신이라는 불행한 상황을 철저히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잘 피했다고 해서
낙nak태tae를 고민하는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낙nak태tae를 법으로 금지시킴으로써 출산을 강압하는 것이 타당한가?
쇠 옷걸이로 불법시술을 받거나
스스로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이기에 한 사람의 인생에 끼어들어서 아이를 낳아라 말아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백번 양보해서 내가 미혼모라고 치자.
나는 경제적 곤란, 시선의 폭력, 육아의 어려움...을 감수하며 애를 낳아서 기르고 있으니
당신도 아이를 낳아 키우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력, 학력, 정신력, 회복탄력성이 모두 나와 다른 타자에게,
나와 똑같이 행동하라고 할 수 있을까?
김미경 선생님은 미혼모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후원하고 있다.
김 선생님 - “내 성격에 나는 아마 아이를 낳아 길렀을 겁니다.”
도반은 약국을 운영할 때
소외 계층을 위한 기부금을 매월 삼십만 원씩 냈다.
미혼모, 미혼부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고,
낙nak태tae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입양 등의 선택지를 적극 권유하는 것...까지.
그러나 최종 판단은 본인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인자’라는 죄책감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할 이들에게,
충분히 형벌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시선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짐을 얹어 주지 않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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