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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깍두기를 타고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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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짱이님 블로그에 갔다가 감성을 터치하는 곡을 들었다.

베짱이 공간 :: 솔직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

 

권진아가 부른 ‘Lonely night’.

부활의 론리 나잇과는 다른 분위기.

내겐 권진아가 부른 론리 나잇이 더 잔잔하게 파고들었다.

김태원 작사.작곡.

아름다운 감성을 길어 올리는 김태원의 재능이, 참 감사하다.

 

 

도반(남편)은 김치를 무척 좋아한다.

유산균의 보고인 김치 맛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란다.

 

맞벌이 할 때는 월간 김치구독했다.

김치를 구독? 매달 어라연 김치를 배송받았다. 

요즘 구독 서비스가 트렌드라기에 흉내 내 본 것이다^^;

꽃과 술과 과자를 구독하는 시대에 살게 될 줄은 몰랐네.

 

김치를 담그는 일은 귀한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는 일이다.

......주방일이 거의 그렇다.

노트북 앞에서 한껏 자유롭다가도

주방에 들어서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던 영화 속 전도연이 생각나고

영화 제목에 도사린 관습적이고 불평등한 성역할을 생각해 본다. 

가까운 미래에, 영화 기생충문광같은 집사님을,

최상의 조건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쉬지 않고 내 밥벌이는 내가 해 온 경제력과

g랄 맞은 성격 덕분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기 싫은 일 중 하나가 김치 담그는 일이다.

 

도반은 김치 못 담그는 여자에 대해 경멸 섞인 말들을 뱉어내곤 했다.

신혼 초, 격렬한 언쟁을 벌였었다.

나도 당신처럼 남이 담가 준 김치를 먹으며 살고 싶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직접 김치를 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십 종류의 김치가 시중에 나와 있는 이 좋은 시대에 편리를 누리며 살겠다!!’

 

그렇게나 김치가 먹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담가 먹을 일이었다.

도반이 즐겨 보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숱한 남자들,

혼자 김치도 담고 고추장도 담그며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놈의 정이 뭔지...

파김치, 부추김치, 오이소박이, 물김치는 만들게 되었다.

일찍이 수봉이 언니가 노래했다.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그리고 지난 주.

부쩍 입맛이 없어 보이는 도반이, 측은해 보였다.

‘fall in love’의 사랑보다 지독하고 고약한 것이,

측은지심의 사랑인 거 같다.

 

도반이 좋아하는 깍두기를 담가 보기로 했다.

2, 생강, 마늘, , ... 재료를 사다 놓고

유튜브로 깎두기 담그는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커다란 무를 알맞게 썰어 적당히 절군 후......

찹쌀 풀을 쑤고......

생강, 마늘, , 양파, ,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액젓............

 

커다란 무를 써는 일부터 엄두가 안 났다.

무를 사다 놓은 지 하루... 이틀...

닷새가 지나서야 비장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무를 씻기 시작했다.

 

어느 요리 전문가의 비법이라는 황태육수를 우려 한 컵 넣고

무 절인 물의 영양도 놓치지 않기 위해 버리지 않고...

국물이 한강이 되어 버렸다.

실내에 하루 정도 두니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오며 발효되었다.

 

이틀 후 잘 익은 깎두기를 맛 본 도반.

이거 정말 날쑨이가 담근 거야? 이여~~ 정말 맛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날쑨이 머리가 좋은데 김치를 못 담글 리 없어~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으니 얼마나 좋아~!”

 

도반의 특급 칭찬을 들으며,

그 찰나의 순간에 도반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었다.

맛 평가에 냉정한 사람이니까 깍두기가 입맛에 맞나 보구나.

내가 갈아 넣은, 귀중한 시간과 노동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고 있구나.

김치를 담그지 못하면 머리가 나쁜 거라는 유치한 생각은 여전하구나...’

 

도반의 칭찬 때문이 아니라

측은지심때문에 앞으로 종종 깍두기를 담글 것이었다.

(↑ 끝끝내 지 잘났다고 주장하는 내가 보인다...)

 

정성껏 요리해서 사랑하는 가족이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는,

예쁜 마음을 가진 분들도 참 많다.

......나에게는 그런 예쁜 마음이 없다.

 

나의 측은지심이 깍두기를 타고 흐른다면

도반의 측은지심은 주전부리를 타고 흐른다.

깍두기는 도반이 원하는 것이고

주전부리는 내가 원하는 게 전혀 아니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다.

 

결혼하고 나서야

가사 노동의 징글징글한 매운 맛을 알게 되었고

친정 엄마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이하 김애란 소설, ‘칼자국에서.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 있다.

그것이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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