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소설의 주제가 빤하게 말로 드러나면 매력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행간에 주제가 숨어 있어서 독자들이 유추하고 해석하게 해야 한다.
마치 매직아이 같다고 할까.
정교한 작법으로 행간에 숨겨 놨던 주제가 슬며시 떠오르는 거지.”
착시에 의한 매직아이가 한창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아래 그림을 초점을 흐린 채 바라보면 입체 나비가 선명하게 보인다.
추상화 같은 그림이 삼차원 입체 공간으로 변하는 매직~!
1. 화면에 코가 닿을 듯 그림을 가까이 보며 초첨을 흐린다.
2. 초점이 충분히 흐려졌으면 그 상태로 서서히 그림과 멀어진다.
3. 나비가 보이지 않으면 1번부터 다시 해본다.
위의 그림에서 삼차원 나비를 보기까지 나는 5분 넘게 걸렸다...
소설, 드라마, 영화를 볼 때 작가나 감독이
매직아이처럼 숨겨둔 메시지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창때는 인상 깊은 장면과 대사가 그대로 머리에 저장 되었다.
이제는 대충이라도 적어야 기억이 난다.
2005년 개봉작 ‘말아톤’은 마라톤하는 자폐아 초원이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초원이 엄마 : 초원이 다리는?
초원 : 백만 불짜리 다리.
엄마 : 초원이 몸매는?
초원 : 끝내줘요~
초원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가 엄마의 과도한 응원(성화) 탓이거나 보상으로 주어지는 초코파이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 후반.
초원이가 마라톤을 하던 중 힘들어 주저앉는다.
초코파이를 건네받지만 초원이는 초코파이를 자리에 버려둔 채 다시 일어나 뛴다.
이전까지는 식욕이라는 1차적 욕구, 외부의 자극(엄마)에 따라 움직였다면
이제는 마라톤 완주 목표와 내적 동기에 따라 달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코파이는 초원이의 성장을 보여주는 매직아이다.
나의 인생드라마, 띵작 중의 띵작 ‘나의 아저씨’는
행간에 숨겨진 매직아이가 무수히 많다.
지독히 신산한 삶을 사는 스물한 살 이지안(아이유 분).
이지안 : 내가 스물한 살이기만 할까. 한 번만 태어났으려구.
매 생애 60살 씩 살았다 치구 500번쯤 환생했다 치면 한 삼천 살쯤 되려나.
박동훈(이선균 분) : 삼만.
이지안 : 어후... 삼만... 왜 자꾸 태어나는 걸까.
......
박동훈 :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나보다.
이지안 :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
이지안이 공중전화로 박동훈에게 전화한다.
박동훈 : 미안하다...
이지안 : 아저씨가 왜요?
처음이었는데.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어요.
또 태어날 수 있어. 괜찮아요.
......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건가?"
박동훈 : 응...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전화해, 꼭.
참으로 점잖은 사랑고백이었다.
환생이 괴로울 만큼 삶을 부정했던 이지안이
‘다시 태어나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 어른스러움에 한참을 먹먹했었다.
‘삼만사리 에피소드’는 이지안의 성장을 보여주는 매직아이다.
이전 글 읽기) 나의 아저씨 삼만사리가 환생하지 않는 법
다음은 나의 아저씨 최고의 명장면이라 글감으로 아껴 두었었다.
지안은 죽어 버리고 싶을 만큼 미안하고 수치스런 마음을 감추고 포악을 떤다.
이지안 : 사람만 죽인 줄 알았지? 별 짓 다했지?! 더할 수 있었는데..
그러게 누가 네 번 이상 잘해주래?!!
바보같이 아무한테나 잘해주고. 그러니까 당하고 살지.
박동훈 : 고맙다... 고마워.
거지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나, 이제, 죽었다 깨나도 행복 해야겠다.
너, 나 불쌍해서 마음 아파하는 꼴 못 보겠고.
난 그런 너, 불쌍해서 못 살겠다.
너처럼 어린애가 어떻게... 어떻게 나 같은 어른이 불쌍해서...
나 그거 마음 아파서 못 살겠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 할 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 살 거고.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냐! 쪽 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냐!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 게.
이지안(흐느끼며) :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
박동훈 : 어! 행복할 게.
‘사랑’이라는 단어 한 번 없는데도 구구절절 애절한 사랑고백이다.
이처럼 가슴 아프고 진실된 사랑고백 장면을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나는 이들처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큐피트의 화살에 깊이 찔려 열병에 들떴던 시기,
나와 함.께.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던 수준의 사랑만 했었다.
일생의 사랑이든, 단 한 번 만났던 사람이든
기억으로 필터링하고 나한테 유리하게 편집해서 글로 까발린다.
참을 수 없이 가볍다.
그렇게 삼겨 먹어서 어쩔 수 없노라 합리화하는 구제 불능 자기애.
나 : 선생님, 저는 문학이 뭔지 몰라요.
그냥 제일 잘 팔리는 잡지처럼 아주아주 통속적인 소설을 쓰고 싶어요.
구 선생님 : 뭐든지 니가 쓰고 싶은 걸 써.
근데 제대로된 통속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이런 내게 작가는 또 한 방 날려주신다.
비열한 역할을 담당한 도준영(김영민 분)이
이지안에게 ‘너, 박동훈 좋아하지’라고 비아냥거린다.
이지은 : 근데요.
좋아하지 그러면서 왜 비웃어요?
그쪽은 사람 좋아할 때 치사한가보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뭔지는 아나?
여러분은 아시는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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